친구를 만나러 간다
난병을 앓고 있다. 아직 별 큰 증상은 없지만, 그냥 두면 어느 땐가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치료를 받아나갔다. 병소를 확인하는 몇 단계 진료를 거쳐 약물과 주사 치료를 시작했고, 양성자 치료 일정까지 잡아 놓고 있다.
양성자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병소 부위와 인근 장기를 떼어놓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질 주입술 치료를 하고, 병소 조직에 정확하게 양성자를 전달하기 위한 모의치료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그러고 난 한 달 뒤 본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했다.
쉽지 않을 그런 치료를 받아나가자면 치료 과정마다 후유증도 있을 것이고, 복용해야 할 약도 많을 것이어서 움직임에도 적잖은 제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치료 후에도 경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지역 문화 모임에서 석 달마다 한 번씩 하는 문화 답사 행사가 있고, 달거리로 만나는 두 친구 모임이 있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할지언정, 놓치면 언제 다시 참여하고, 만날지 몰라 힘들어도 나서기로 했다.
답사 모임은 역사적인 의의가 깊은 몇 곳을 태워주는 차를 타고 가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잘 다녀왔다. 함께한 사람들이 내 병을 터놓을 수 있는 계제에 있지도 않고, 그럴 겨를도 없었다. 불편을 혼자 삭이며 일정을 따라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다녀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친구들을 만나러 갈 차례다. 수십 년 지기들이다. 살아가는 자잘한 일들이며 나아가서는 제법 거창한 담론에 이르기까지도 흉허물이 없이 나누는 사이다. 그래서 늘 만나고 싶고, 대화도 나누고 싶은 사이다. 힘든 여정 바로 다음 날이라 피곤을 무릅쓰고 길을 나섰다.
십여 분을 걸어 반 시간 정도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 떠날 시각을 기다려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렸다. 도회지 환승센터에 내려 지하철 승강장을 찾아갔다. 전동차를 타고 도심 땅속을 달려 어느 역에서 내려 약속 장소에 이르렀다.
두 친구는 제바닥에 살고 있지만, 나는 수백 리 길을 달려가야 했다. 그래도 괜찮다. 그들과 만나면 모든 걸 터놓을 수 있으니까. 친구들을 반갑게 만났다. 상에는 돼지고기 한 접시와 막걸리병이 놓였다. 나는 빈 잔을 앞에 놓고 고기만 먹으며 친구들 말을 듣는다.
나도 대화 속에 들어, 사실 여차여차해서 이런 병을 앓고……, 하는데 한 친구가 내 말을 자르며 자기도 어느 곳이 이상하다며 자기 말을 했다. 말끝을 기다려, 그래서 나는 무슨 치료를 받으려 한다고 하니, 한 친구는 자기가 아는 사람도 그런 치료 받았다며 늘어놓는다.
심지어는 여주인까지 끼어들어 자기도 힘든 병을 앓느라고 그래서 무진 고생을 했다며 하소연하듯 말을 잇는다. 정작 하소연하고 싶은 사람은 나인데, 내 말은 자꾸 토막 지고, 그 토막 사이로 친구들과 여주인의 말이 엉긴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러려고 내가 그 먼 길을 허위허위 달려왔던가. 여주인은 그렇다 쳐도 이 심우心友들은 왜 내 말을 목 놓아 좀 들어 주지 않고 자기 말들만 내리 늘어놓고 있단 말인가. 친구들이 야속했다. 내 속으로 들지 않는 이들의 말들이 귓전을 어지럽게 돈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취할 일도 없어, 내 말이 취중의 말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맨정신으로 하는 내 말이 점점 술에 취해 가는 그들의 귀에 조금은 따분하게 들렸던 건 아닐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제 답사 여행을 갔을 때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어도, 내가 별말을 하지 않고서도 불편 없이 먼 길을 잘 다녀오지 않았던가. 그 일행들에게는 거는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속을 답답해하는 것은 ‘기대’ 때문이란 말인가.
문득 성철 스님의 한 법문이 떠오른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자기는 본래 순금입니다.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있습니다.”라 했다.
친구들이 병자인 나를 위해 줄 것이라는 그 기대가 내 마음의 눈을 가려 그렇게 속이 답답하고, 내 속을 몰라 주는 친구들이 야속하게 생각되었던지도 모르겠다. 스님은 또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라고 했다.
여주인이 내 말 속을 끼어들어 자기도 몸 어디가 이상하다든지, 누가 또 나처럼 그런 병을 앓고 있다든지 하는 말들은, 병든 몸으로 먼 길을 달려온 나에게 그 동병상련의 정을 말하는 것으로 나를 위로해 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 내가 치료를 받을 동안에는 쉽게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 의사와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치료 잘 받다가 좋은 날이 오면, 그때 다시 보세…….”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여 손을 굳게 잡고 헤어졌다.♣(2026.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