댑싸리 전설(5)
이웃 밭에 난 댑싸리 싹을 괭이로 긁어 매주었다. 콩밭 고랑에 댑싸리가 듬성듬성 났다. 고샅에 서 있던 댑싸리에서 날아간 씨가 퍼뜨린 것이다. 밭 옆에 작물도 아닌 것이 나서 씨를 퍼드리는 것이 성가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웃은 말이 없다.
고샅의 댑싸리를 떠나보낼 수 없는 내 속내를 모르지는 않는다. 아내가 댑싸리를 기르려 했던 자리기 때문이다. 아내가 만든 밭의 한 부분을 떼어 이웃에 부치라 하고, 아내는 밭과 담장 사이에 나 있는 고샅에 댑싸리 씨를 뿌렸다.
그 씨에서 싹이 새파랗게 돋아날 무렵 아내는 댑싸리도, 밭도 볼 수 없는 곳으로 멀리 가버렸다. 병 자리에서 댑싸리가 좀 자라거든 고샅 양쪽에 한 줄로 심어 달라 하고는, 그렇게 심어진 댑싸리를 아내는 볼 수 없었다.
아내가 댑싸리를 왜 그렇게 심고 싶어 했던지를 나는 모른다. 댑싸리가 자라는 모습을 보니 복슬강아지처럼 아주 귀여웠다. 다 커서 바람이 조금 서늘해질 무렵이면 바알갛게 드는 물이 새댁 다홍 치맛자락처럼 고왔다.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댑싸리 어린잎은 식용으로도 쓰고, 여름에 말려서 이뇨, 강장, 동통, 변비 등에 약재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아내는 늘 어디가 조금씩 편치 않다고 했었다. 그런 치료에 쓰고 싶어서였을까. 왜 그러냐 물으면 내가 애를 먹여서 그렇다고도 했었다.
나에게 그런 용도를 말해 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댑싸리를 심은 것도, 그것들이 나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내는 귀엽고 고운 모습도 보지 못하고, 식용으로도 약재로도 써 볼 겨를도 없었다. 그 아리따운 모습을 내가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아내는 이웃에게 부치라고 준 밭에서 난 댑싸리도 크는 걸 봐 가면서 그것조차도 어떻게 쓸 모를 삼았을지도 모른다. 관상觀賞이든 이용利用이든 그 용도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할 수 없어 그 밭에 난 댑싸리를 매 주었다.
고샅에서 난 것만은 아내의 마음을 따라 제대로 키우고 싶었다. 댑싸리는 내가 씨를 심지 않아도 제가 떨어뜨린 씨로 제 모습을 잘 가꾸어 갔다. 그렇게 댑싸리가 나고 피고 지기를 아내가 간 햇수만큼이나 거듭하고 있다.
씨가 떨어진 대로, 나고 자라는 대로 가만두면 온 고샅이 온통 댑싸리로 덮일 수도 있다. 그러면 다니는 길에 난 댑싸리 싹은 뽑아내거나 어떤 방법으로라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 나서 자라려는 걸 무참히 뽑아내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안쓰럽기도 하다.
올해는 아예 양쪽 섶만 그대로 두고 가운데 길에는 풀 생장을 억제하는 부직포를 덮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걸 아내도 괜찮아할 것 같다. 댑싸리는 길섶에서 잘 나고 잘 자라주었다. 씨 떨어진 자리에서 몰려 난 것을 조금 자라면 한 줄로 옮겨 심어야 한다.
새끼손가락 크기쯤 자랐을 때 한두 포기씩 뽑아 고샅 담을 따라, 밭 두둑 옆 섶을 따라 나란히 심었다. 제 난 자리보다 살기가 아무래도 못 한 모양이다. 딴은 정성 다해 옮겨 심고, 부지런히 물 주고 해도 곧장 시들어버리기도 했다.
어쩌다 내가 물 주기를 잊거나 집을 비우는 날이면 이웃이 와서 물을 주기도 했다. 속 모르는 사람 같으면, 소출이 나는 것도 아닌 걸 두고 뭘 저리 아웅다웅하느냐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이웃은 내가 간직하고 있는 그 전설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이웃은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우리 집과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다. 그 부인은 아내와 더욱 각별했고, 나는 남편과 더불어 주붕으로 지내고 있다. 아내가 영정이 되어 제단에 앉았을 때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서둘러 달려와 통한을 토로하던 이웃이다.
아내를 그려선지, 홀로된 나를 아리게 여겨선지 간혹 여러 가지 먹거리며 반찬거리를 챙겨주기도 했다. 그렇게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과 나를 챙기는 마음으로 댑싸리에게도 물을 주곤 했을 것이다. 아내도 보고 있을 것이다.
옮겨심은 것 중에 시들어 소생 가망이 없는 것은 애석하지만 뽑아내고 다른 것을 옮겨 심는 수밖에 없다. 옮겨 심는 것 말고는 씨 자리에 난 것을 다 그대로 두었다. 옮겨 심은 게 다 잘 살아도 그 자리에 둘 것이다. 어느 것인들 아내 마음을 담아 나지 않은 것이 있으랴.
그렇게 가꾸다 보면, 올해도 아내의 바람대로 한 줄로 보기 좋게 잘 기를 수가 있을 것이다. 여름이 되면 복슬복슬한 잎사귀를 날리며 어여쁜 모습으로 안겨올 것이고, 가을이 되면 바알간 단풍 빛이 되어 보는 눈을 어리게 할 것이다.
그 빛이 지면서 여물린 씨앗은 겨울바람을 안으며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다시 봄이 오면 그 씨앗은 싹을 틔울 것이고, 나는 또 아내의 말을 따라 한 줄로 옮겨 심을 것이고, 아내는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볼 것이다.
나는 지금 난병 진단을 받아 놓고 있다. 그 병의 끝이 어디일지는 몰라도, 그 끝자락까지 아내와 나의 댑싸리 전설은 이어질 것이다. 그 난병 다스리러 집을 비우는 날이면 이웃은 나 대신 기꺼이 물을 줄 것이다. 그렇게 전설은 오래 살아갈 것이다. ♣(2026.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