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이일배의 수필 <머나먼 귀성길>을 읽고

이청산 2008. 2. 18. 13:08

 

 

이일배의 수필 <머나먼 귀성길>을 읽고

 

김         길         웅

(대한문학 편집위원, 수필가)

 

이 수필을 읽으면서 모천회귀를 떠올렸다. 연어는 바다에 살다가 제 자란 강으로 올라온다. 그러고서 다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강바닥에 알을 낳는다. 역류에 목숨을 건 운명적 역행, 그 사투의 회귀는 그들의 생리이자 본능이다. 따지고 보면 근본이나 초발심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명절 때 서울이 공동화하는 민족의 대이동을 보라. 귀성길은 고생길이라면서도 아득바득 고향을 찾는다. 혈연과 가족의 온기를 찾아가는 것이다. 처음엔 놀라다 나중엔 가슴이 울컥하지 않는가.

지극히 평범한 제목인데도 한 번 읽고 나니 긴 한숨과 더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섬을 탈출한다는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이다. 기상 악화로 결국 돌아서 가는 등 뭍으로 나가 고향 가는 것이 그야말로 굽이굽이 구절양장이다.

매표했다 물리고 다시 표를 바꾸고 배 타고 뭍에 닿아 버스에 몸을 맡긴 뒤 주차장에 내려 택시를 잡아타서 집에 도착한 게 새벽 1시. 무렵 11시간의 대정정이었으니.

이 수필은 자칫 산만에 흘러 독자를 끌고 가는 게 힘겨울 것을 발 한 짝 들여놓은 독자를 끈질기게 붙들어 집 어귀에까지 이른다. 조금은 엉성한 듯 허한 듯하면서도 행동 단계가 명료해 귀향 길 위 진행의 혼란을 최소한 그 끈기에 몸을 기대어 가능했던 것 아닐까.

 

 

2시에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포항행 선표를 묵호행 씨플라워호로 바꾸어 급히 배에 올랐다. 사방 선창을 둘러치고 있는 씨플라워호는 포항행 썬플라워호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선실은 밝고 깨끗했다. 항구를 떠난 지 반시간 뒤쯤에 바다에서 섬의 모습을 지웠다. 승무원이 포항으로 갈 승객은 손들어 보라 했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포항으로 가는 차편을 대절해 보겠다는 것이다. 손을 번쩍 들었다. 검은 구름이 수평선으로 내려앉고 선창에는 빗물이 튀었다.

 

 

조바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초조하니 언어가 긴장될 수밖에 없다. 하선하면서 버스 탈 사람 손들라 하자 아이처럼 손을 번쩍 들며 애태우는데 독자가 그 뒤를 좇지 않을 재주가 없는 것이다. 딴은 작가의 마음 졸임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강한 의식의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는 것일 테다. 귀성 말이다. 그건 비단 작가나 독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들 피붙이들의 공통적인 행동의지다. 이일배님은 귀성과정을 꼼꼼히 챙겼고 또 그것을 쉽고 평범한 말로 잘 교직해놓았다.

"갓 돌 지난 손녀는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잠자는 저 모습이 어쩌면 저리 무구할 수 있을까. 저리 귀애로울 수 있을까. 저리 평화로울 수 있을까. 저 모습을 보려고 내가 이렇게 달려 왔나 보다." 그 멀고 먼 귀성길을 달려 온 심경을 직설적으로 실토한다. 반복의 구사가 이처럼 빛을 내는 경우도 드물다.

이 작품은 어휘가 평이해 편안하게 읽게 했고, 구성이나 전개에 특별한 장치를 하지도 않았다. 독자를 구속하거나 강제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같이 숨차고 종종거리게 하는 눈에 띄지 않는 에너지가 있다. 소재의 힘이다. 가장 한국적인 보편성을 갖고 있는 귀성이라는 소재가 주인을 잘 만나 탄력을 받은 것이다. 거듭 얘기하거니와 사람다움의 본질과 따뜻한 시선이다.

('대한문학' 2008 봄호)

 

수필 <머나먼 귀성 길>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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