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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는 '거인'을 잃었다

이청산 2008. 9. 29. 10:09

할리우드는 '거인'을 잃었다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의 폴 뉴먼 83세로 타계

제임스 딘 대신 맡은 배역으로 주목

생애 통산 10회 아카데미상 후보 올라

모범적 사생활·자선 활동으로 존경받아

▲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푸른 눈과 섬세한 연기로 50 년간 80편의 작품을 남긴 폴 뉴먼. 로이터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의 명배우 폴 뉴먼(Newman·83)이 숨졌다. 외신들은 50년 동안 80여 작품에서 활약했던 이 전설적인 배우가 오랜 암 투병 끝에 미국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 자택에서 26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뉴먼은 스크린뿐 아니라 스크린 밖의 삶에서도 평생을 자선활동에 힘썼던, 할리우드의 '겸손한 거인'이었다.

예일대 드라마스쿨과 뉴욕 액터스 스튜디오 출신의 연기 엘리트였지만, 사실 뉴먼이 처음 주목 받은 이유는 공교롭게도 친구의 불행 덕분. 액터스 스튜디오 동급생이었던 제임스 딘이 1955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원래 그가 맡기로 했던 '더 배틀러'(The Battler)의 주연 배역이 폴 뉴먼에게 온 것이다. "실력보다 운"이라며 입방아 찧던 사람들을 그는 특유의 연기력으로 한 방 먹였고, 곧 자신만의 성채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3년 뒤 '길고 긴 여름날'(1958)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허슬러'(1961) '내일을 향해 쏴라'(1967), '스팅'(1973) '타워링'(1974) 등으로 이미 40대 시절에 '연기의 전설'로 불렸다.


▲ 로버트 레드포드과 함께 연기한 뉴먼(왼쪽)의 대표작‘내 일을 향해 쏴라’(1969). 로이터

남우주연상을 받은 '컬러 오브 머니'(1986)를 비롯해 남우조연상 후보였던 '로드 투 퍼디션'(2002)까지 생애 통산 총 10회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폴 뉴먼은 누구보다 오스카의 사랑을 많이 받은 배우였다. 그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은 배우는 잭 니콜슨(12회), 메릴 스트립(14회) 정도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에미상을 받은 '엠파이어 폴스'(Empire Falls·2005), 픽사의 애니메이션 '카'(2006)에서 목소리 연기를 펼칠 만큼 죽을 때까지 배우였다.

뉴먼의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력은 자동차 레이서. 평생 허영과 사치의 할리우드를 비판했던 그는 "레이싱이야말로 내가 할리우드 쓰레기(rubbish)에서 탈출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며 1970년대 이래 자동차 경주에 탐닉해 왔다. 1977년 프로레이서로 데뷔해 몇 개 메이저 대회에서는 실제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연기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미국인의 존경을 받은 모범적 인간이었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남녀로 넘쳐나는 할리우드에서 지난 50년 동안 한 명의 배우자(조앤 우드워드·Woodward)와 해로(偕老)했고, 파티와 명성에 집착하기보다는 소문내지 않는 기부와 자선활동에 전념해왔다.


▲ 1958년 조앤 우드워드와 결혼식을 올린 폴 뉴먼. 우드워드는 현재 78 세로 생존해 있다. AP

1982년 그가 설립한 식품회사 '뉴먼스 오운'(Newman's own)은 지금까지 2억5000만 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1988년 시작한 소아암 환자 돕기 운동은 현재 전 유럽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워런 버핏, 테드 터너 등과 함께 '책임지는 부자'(Responsible Wealth)라는 단체를 만들어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 왔다. '내일을 향해 쏴라' 이후 평생의 친구였던 로버트 레드포드는 "미국은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 그가 있어 세상은 더 풍요로웠다"고 고인을 애도했다고 AP는 전했다.


 


/ 조선일보
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