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병 -이규보의 ‘詩癖’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나 아내의 눈에 비친 나는 종일을 한가롭게 빈둥거리다가 해거름이면 산에나 오르고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내나 남들처럼 땀 흘려 흙을 쪼거나 무얼 정성 들여 심거나 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번다했던 생의 한 막을 거두면서 이 한촌을 찾아올 때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서였다. 텃밭 가꾸기는 흙을 좋아하는 아내의 몫으로 미루었다. 아내도 위하고 나도 위한다는 변명과 함께 그 신념(?)을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준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남들이 그리 보는 것처럼 마냥 시간만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 강둑을 거닐며 물이며 풀꽃, 해거름 산을 오르며 나무와 숲을 보면서 느꺼워해야 하고, 신문으로 뉴스로 세상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