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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촌의 여름 꽃길

이청산 2016. 8. 19. 15:29

한촌의 여름 꽃길

 

아침 산책을 위해 길을 나서는 걸음이 깃털처럼 가볍다. 보고 싶고, 기다려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애타게 기다리던 마을 숲의 상사화가 드디어 어제부터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오늘은 얼마나 더 피어났을까. 그 꽃이며 한촌의 여름 길벗들을 만나러 간다.

숲을 바라보며 봇도랑이 흐르는 논두렁길을 걷는다 벼 이삭이 제법 패어나고 있다. 언제나 논들을 포근히 감싸 안고 맑게 흐르는 도랑물에 오늘은 전에 보이지 않던 조그만 꽃잎 몇 개가 동동 떠있다. 도화유수묘연거? 어디 무릉도원이라도 있어 떠내려 오는 복사꽃인가. 자세히 보니 물속에 잠겨있는 질경이가 대궁을 물 위로 내밀어 피운 물질경이 꽃이다. 물에 잠겨서도 꽃만은 물 위로 피어나게 하는 생태적인 치성이 가상하다.

숲 한 자리를 차지하고 피어나는 상사화, 겨울 추위가 채 가시기 전의 이른 봄부터 싹을 틔워 봄이 익을 무렵에는 난초 같은 잎을 피워내더니 봄이 저물면서 서서히 말라 여름이 들 무렵에는 땅속으로 잦아들 듯이 사그라졌다.

서로 그리면서도 만날 수 없는 잎과 꽃, 육칠월을 감감히 지나 된더위가 끓던 팔월에 들면서 움을 돋우어 내더니 어느새 긴 대궁이 솟아올라 긴 꽃술과 함께 홍자색 꽃을 피워낸다. 늘 그리움 속을 살고 있는 나를 위해 피는 것 마냥 나를 볼 때마다 해맑은 미소를 건네준다. 오래 오래 피거라. 내 그리움이 다 삭을 때까지 피어 있거라.

한참을 바라보다가 느티나무, 회나무 노거수 깊은 그늘에 몸을 적시며 강둑길을 오른다. 강둑길 절반이 콘크리트로 덮였다. 나머지 절반은 또 언제 덮일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강둑에 마구 자라는 풀들이 성가시단다. 풀꽃들과 같이 살 수는 없는 일일까.

풀은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뿌리도 들일 수 없는 잿빛 길섶에 간난하게라도 몸을 붙이며 꽃이며 잎들을 자분자분 피워낸다. 노랗게 피어나던 금계국은 시나브로 꽃을 거두어 가고 있지만, 꼬리를 살랑대는 바랭이며 수크령 사이로 박주가리 넝쿨이 쌀알 같은 꽃을 종종 달고 뻗어나고, 분홍색 깨알 별이 오종종한 무릇꽃도 곧게 뻗은 선형 잎새 가운데서 고운 얼굴을 내민다.

포도가 팍팍은 하지만 줄지어 선 벚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강둑의 벚나무는 사철 꽃을 피운다. 봄에는 해사하고 화사한 꽃 천지를 이루고, 오늘 같은 여름날에는 푸르고 무성한 잎을 피워 그늘을 만들고, 가을에는 물든 단풍으로 붉은 꽃을 곱게 피우고, 겨울에는 송이송이 눈부신 은화를 빚어낸다.

그 벚나무들 사이로 쑥대며 익모초, 비사리들이 키를 한껏 세우고 있다. 그것들 사이로 가는 넝쿨이 기는가 싶더니 파란색 나팔꽃이 아롱거린다. 이 땅에 산 지 얼마나 되었기에 아직도 국적을 못 바꾼 미국나팔꽃이다. 저 조그만 주홍의 나팔꽃 무리, 유홍초다. 메꽃이 분홍색 나팔을 벌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잔잔한 잎사귀로 뻗어나는 넝쿨에 자줏빛 작은 꽃들을 초롱처럼 달고 있는 갈퀴나물, 귀여운 꽃에 왜 갈퀴란 이름이 붙었을까. 모두 여름을 꾸미는 꽃들이다.

드디어 포장길이 끝났다. 예산이 서면 나머지 강둑길도 덮을 거라는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예산인가. 풀숲길이 이어진다. 길머리 느티나무 노거수 아래 정자가 아늑히 자리 잡고 있다. 잠시 앉아 강물을 바라본다. 우거진 물풀 사이로 무슨 밀담이라도 속삭이듯 흐르는 강물. 문득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강물은/ 흰 구름을 우러르며 산다. /만날 수 없는 갈림길에서/ 온몸으로 우는 울음.”(오세영, ‘먼 그대’) 아니다. 울음이 아니다. 이 싱그러운 여름을 기리는 선율 맑은 소리다. 한낮 노란 달맞이꽃들이 손을 흔든다. 강물도 반가운 듯 윤슬을 반짝인다.

붉나무가 강둑 언덕배기에 서서 붉을 마련을 하고 있고, 쑥쑥 솟아있는 망초 대궁과 함께 봄의 강둑을 하얀색으로 수놓던 개망초가 작별의 손을 흔든다. 촘촘히 돋아있는 사위질빵 연노랑 꽃의 덩굴이 가시 돋은 시무나무를 타고 오르는데, 하얀 줄기의 복분자 넝쿨도 함께 어우러진다.

무슨 넝쿨인들 칡넝쿨만할까. 칡넝쿨은 염치도 체면도 없다. 풀이며 나무를 가리지 않고, 저보다 강한 것이든 약한 것이든 돌아보지 않고 감아버린다. 온 길섶이 그놈의 칡넝쿨이다. 그래도 무슨 꼬리 같은 것을 달고 홍자색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가관이다.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뻗어나는 것도 꼼짝 못하게 하는 게 있다. 새삼 넝쿨이다. 잎도 없는 노란 넝쿨이 둘둘 감아버리면 그 기세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넓적한 잎을 단 칡넝쿨도 꼼짝 못하고 기가 죽는다. 이것도 먹이사슬인가. 적자생존인가.

우거진 그늘사초며 잔디를 밟으며 지나는 길섶에는 가을이면 하얀 갈꽃을 피울 새파랗게 날선 갈댓잎이 하늘거리고 있고, 환삼덩굴이 서로 깍지를 끼고 꽃대를 들어 올리며 얼크러질 즈음에 강둑 꽃길도 끝난다. 한촌엔 어디 여름 꽃길뿐이랴. 사철이 꽃길이다. 한촌의 길섶은 모두가 꽃이다. 꽃 아닌 풀이 어디 있는가.

한촌에는 잡초란 없다. 에머슨이란 학자가 말했다던가? ‘잡초는 그 가치가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이라고. 무슨 가치가 더 필요할까. 푸름 속에서 색색의 꽃을 피우는 것만으로도 저들의 가치를 다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한촌을 사는 까닭이다. 한촌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가을 꽃길을 또 걸을 것이고 겨울 꽃길을 또 기다릴 것이다.

내 삶의 길을 걸어가듯-.(2016.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