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마음의 사랑 몸의 사랑' 작법 연구

이청산 2013. 10. 10. 15:08

창작 에세이 비평연구서인 「창작문예수필」12호에서

'마음의 사랑 몸의 사랑'(절문학」22호 발표)을 텍스트로 하여

이관희 필자께서 작법 연구를 한 내용을 스캔한 자료입니다.

 

※'마음의 사랑 몸의 사랑' 원문 보기

 

 

 

 

 

 

 

 

  [작품과 작법]

에세이의 기본 조건들이 잘 갖추어진 작품

 

이 관 희 (창작문예수필발행인)

 

문학론은 본래 창작 문학 작품에 관한 논의이다. 몽테뉴의 에세이는 창작 문학이 아닌 일반 산문문학이다. 일반 산문문학의 종류는 일일이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 대표적 양식을 에세이로 드는 까닭은 에세이의 작법이 일반 산문 중에서도 가장 창작적이기 때문이다.

창작적인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본 조건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전문성이고, 두 번째는 인생에 대한 비평 능력이다. 전문성이란 반드시 사회과학적인 전문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주부라도 가사 일에 관한 전문성을 갖추었으면 가시 일에 관한 전문성이 돋보이는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여성 수필가들이 전문성이 결여된 가사·가정에 관한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이야기만 쓰고 있기 때문에 신변잡기비난을 듣게 된다.

두 번째 인생에 대한 비평 능력은 여러 가지 종합적인 조건들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물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세포적인 시각이 아닌 복합주고적인 시각을 갖추고 있어야 창조적 인식과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사물 대상을 눈에 보이는 한 쪽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내면 등 360도 시각에서 볼 줄 아는 비평적 시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시대 윤리 도덕관이나 상식에 준하면서도 특정 가치관에 묶이지 않는 미래 지향적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건전한 정신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독자들과 공간할 수 있는 에세이를 쓰게 될 것이다. 그 외에 창작문학에 뒤지지 않을 문장력을 갖추어야 될 것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필자가 이 작품 마음의 사랑 몸의 사랑을 작법공부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가 이 같은 에세이의 기본조건들이 잘 갖추어진 작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작법에서 무엇보다도 필자가 관심 있게 본 점은 신문기사와 영화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는 점이다. 현대인은 자고 깨면 각종 미디어의 풍랑이 이는바다를 항해하며 정신적, 심리적, 감정적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좀처럼 수필가들의 글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글은 보기 어렵다. 수필가들은 신문도 안 보고 TV도 안 보고 사는가? 혹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소재를 취해 올 경우 어떻게 에세이를 써야 할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면 이 작품의 작법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서두는 신문에 난 아프가니스탄전 참전 미군 부상병 이야기를 배치하고 있다. 즉 신문기사를 소재로 삼고 있다. 두 다리를 잃은 절망적인 조건 속이었기 때문에 더욱 빛이 나는 두 연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이를 정신적인 사랑이라고 한다면, 남녀 간의 사랑은 정신적인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작가는 육체적 사랑도 필수조건일 수밖에는 없는 경우를 영화 이야기를 예로 들어 배치하고 있다. 즉 영화 이야기를 또 다른 하나의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부터 전개 문단 중반에 이르기까지 두 상반되는 사랑 이야기를 배열하고 있는 갈등 구조를 만들기 작법은 창작적인 구성법의 기본구조이다. 에세이의 본래 구성법은 어떤 주제에 대한 논리적인 전개이다. 에세이를 인생 비평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몽테뉴의 에세이가 지구촌 사람들에게 사랑을 얻은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였다. 어느 시대나 인간의 심성은 설교보다 이야기를 좋아하였지만 특별히 현대인은 교회 설교조차도 예화가 없으면 곧 졸기 시작한다. 에세이는 원래 설교와 같은 맥락의 비평적인 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기분 좋게 읽을 수 있게 할 것인가의 방법론에 대한 대답이 창작적인 구조의 에세이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서두에서 전개 중반 부분까지 두 가지 상반되는 사랑 이야기를 배열한 것이 창작적인 구조라 하였다. 그 같은 창작적인 구성이 어떻게 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에세이(비평·설교)를 기분 좋게 계속 읽어가게 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앞에 배치된 두 사랑 이야기를 읽는 동안 작자에 앞서 독자가 먼저 어떤 판단(논리·설교)을 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랑 이야기에 이은 작가의 목소리(에세이·비평행위)는 결과적으로 독자들의 판단행위에 편승하여 진행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즉 독자가 작가의 개입(에세이·비평 목소리)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쫒아가는 느낌 속에서 후반부를 읽어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에세이가 창작적이 되어야할 작법상의 이유이다. 그 밖에 사람의 두뇌는 논리적 글보다 이야기 형태의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에세이가 창작적이 되어야 할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에세이 작법에서 또 한 놓쳐서는 안 될 것은 충분한 자료 수집이다. 자료 수집은 에세이 작자의 조건 중 전문성을 갖추어야 된다는 점에 속할 것이다. 사랑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전문적인 자료 수집을 해야 된다. 이 세상에 사랑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는 동네 사람이 붙잡아 온 창기를 앞에 놓고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여 판결을 유예하였다. 예수도 판결하지 않은 창기를 수필가가 입에 거품을 물고 돌을 던질 수가 있는가? 길고 짧은 것은 대 보아야 안다는 말이 있다. 법도 살인자에게 함부로 사형언도를 내리지 않는다. 하물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진실)를 추구한다는 문학이 그의 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일찌감치 사형언도를 내려서야 되겠는가? 죽기 1분 전에 잘못을 뉘우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1분 전의 가능성에 기대를 두는 것이 문학이 할 일이다. 정신적인 사랑은 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귀한 것은 아니다. 몸의 사랑이 없다면 지구촌은 원시시대에 막을 내렸을 것이다.

작품의 전반부에 배열한 두 사랑 이야기는 신문기사와 영화 이야기이므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용하고 있는 이종문의 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필자도 이 작품에서 처음 읽었다. 이것이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서 수집한 몇 가지 자료중이서 결정적인 중요 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 즉 어떤 문제에 대한 토의, 논의, 비평을 말미까지 읽어 온 독자라면 이제 작가의 논지에 설득당할 준비가 다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결정적인 카드로 이 같은 시작품을 내 밀고 있는 작법이야 말로 창작적인 작법이라 할 것이다. (창작문예수필12, 20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