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2

댑싸리 전설(2)

댑싸리 전설(2)   댑싸리는 올가을에도 더는 붉을 수 없을 것 같은 짙붉은 물이 들었다. 아내는 올해도 그 붉은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런 채로 저 붉은빛은 씨를 남기면서 하얗게 바래 갈 것이다.  지난해 초여름 가료를 위해 아이들 집에 가 있던 아내가 당부한 말을 따라 그렇게 심었던 대로 올 초여름에도 어린 댑싸리를 문간 어름에 한 줄로 나란히 심었다. 그 댑싸리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흘러가는 사이에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빛을 바꾸어 가며 무럭무럭 자라다가 이제 그 푸른 고비도 넘어 새빨갛게 물이 들었다.  아내는 자기가 씨 뿌려서 난 모종을 한 줄로 보기 좋게 심어 달라 해놓고 초록으로 제법 북슬북슬한 자태를 이룬 한여름 어느 날, 그 모습을 영영 볼 수 없는 나라로 가버렸다. 지금처럼 가을이 이슥해..

청우헌수필 2024.10.27

세월의 자국을 넘어서

세월의 자국을 넘어서   커다란 거울이 터미널 화장실 입구 옆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화장실을 가도 무심히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차에 오를 시각이 임박하여 급히 가다 보면 눈 돌릴 겨를이 없어 거울을 지나치기도 한다.  어느 날 차 탈 대비로 화장실을 들면서 우연히 거울 쪽을 곁눈질하게 되었다. 허리 구부정한 웬 늙은이 하나가 중절모를 쓰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언뜻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나였다.  낯선 모습이다. 내 언제 저리 허리가 굽어졌으며, 모자 아래로 드러나 있는 머리카락은 왜 저리 허옇게 보이는가. 집에서 반듯하게 서서 거울을 볼 때와는 영 딴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런 모습이 되어 있었구나.  점점 늙어가는 줄이야 모를 ..

청우헌수필 20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