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이치 2

내가 사는 첫날들

내가 사는 첫날들 사십 년 넘는 세월을 두고 일기를 써 오고 있다. 오랫동안 써 오면서 한결같은 일이 하나 있다. 날마다 적는 것은 늘 내 살아온 날의 맨 끝 날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일일까. 어쨌든 나는 늘 생애의 끄트머리만 잡고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기장의 끝에다 이따금 ‘내일은 어떻게 올까.’라고 적을 때가 있다. 오늘과 다른 날이 올까, 궁금할 때가 많다. 똑같은 날을 살아본 적이 없다. 날짜가 어제와 다를 뿐만 아니라 하늘도, 산책길의 풀꽃도 어제와 같지 않은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의 일이라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도 모두 그렇다. 날마다 얼굴 보며 나누는 아내와의 대화도 다르고, 어제와 같은 책을 읽어도 느낌이 같지 않고, 매일 걷는 ‘만 보 걷기’에서도 꼭 같..

청우헌수필 2021.05.09

나무의 겨울

나무의 겨울 겨울 산에 찬 바람이 분다. 넓은잎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발가벗은 몸으로 서 있다. 가을부터 한 잎 두 잎 떨어져 내리던 나뭇잎이 겨울바람을 맞으며 몇 안 남은 것마저 다 떨어뜨리고 있다. 저러고도 이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을까. 군걱정이다. 나무는 잎 다 떨굴 이 겨울을 위하여 한 해를 살아온지도 모른다. 나무는 늙지 않는다. 해마다 청춘으로 산다. 그 청춘을 위하여 이 겨울은 새로이 시작하는 계절이다. 입은 것은 모두 벗어버리는 것으로 새로운 시절을 기약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맨몸으로 하늘을 바란다. 맨살이 향하는 곳은 오직 하늘이다. 온몸으로 하늘을 안는다. 이 나무를 보고 시인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입는데/ 나무는 옷을..

청우헌수필 2020.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