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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경고를 어겼다

의사의 경고를 어겼다 의사의 경고를 어겼다. 의사가 오르지 말라는 산에 오르고 말았다. 어쩌다 척추에 금이 가는 변고를 당했다. 십여 일 입원하면서 갈라진 금을 붙이는 치료를 하고, 퇴원하고서도 계속 가료 중이다. 산은 평지보다 허리에 더 무리한 힘이 가해질 수 있고, 때에 따라 치명적인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기동할 만할 즈음부터는 잠시간씩 걷는 것도 회복에 도움 되는 일이라기에 순탄한 길을 잡아 조금씩 걸었다. 늘 다니던 강둑길로 나가서 맑게 흐르는 물을 보며 위안 삼기도 하고, 고요한 골짜기를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바뀌어 겨울 가고 봄이 왔다. 시나브로 오는 봄과 함께 땅속에 묻혀 있던 상사화 둥근 뿌리가 잎 촉을 내밀기 시작하여 점점 자라 오르고, 두렁에는 하늘..

청우헌수필 2024.03.24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삼월, 마침내 봄이 온다. 냉기 가득한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해 나온 것 같다. 아직 완전히 통과한 것은 아니다.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달려가면 따스한 햇살이며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날 것이다. 그 터널의 출구를 제일 먼저 틔운 것은 상사화 잎 움이다. 찬 바람 불고 눈발도 날려 아직도 겨울이 제 품새을 지키려 간힘을 쓰고 있는 어느 날 그 냉기를 뚫고 꽁꽁 움츠리고 있던 알뿌리에서 움을 밀어냈다. 저 움이 자라 치렁한 잎을 피워내다가 여름 들머리에서 잎을 다 거두고 꽃대를 밀어 올릴 것이다. 봄 하늘을 가장 먼저 연 사람은 마을 농군 정태 씨다. 올해부터 벼농사를 거두고 사과 농사를 지어볼 참이라며 굴착기를 동원하여 너른 논들을 파기 시작했다. 서너 자 깊..

청우헌수필 202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