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병 5

해어지다 헤어지다

해어지다 헤어지다 여름밤 잠자리가 좀 시원 하라고 삼베 침대보를 내어 침대에 깔았다. 아내가 베를 뜨다가 침대 너비에 맞게 잘라 가장자리를 박음질하여 만든 것이다. 몇 해를 여름만 되면 깔고 자면서 뒤척이고 비비대고 하다 보니 가운데 자리가 떨어져 해어졌다. 색깔 맞는 실을 골라 꿰매어 보기도 하지만, 낡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웃 자리가 또 해어진다. 아내가 있다면 어떻게 손보아 해어지지 않게 깁거나 다시 천을 뜨다가 새로 마련해 주겠지만, 그렇게 해줄 아내와 떨어져 헤어졌다. 다시 못 돌아올 세상으로 가버렸다. 어떤 물건이라도 오랜 시간을 두고 많이 쓰다 보면 낡고 해어지지 않는 게 있을까만, 사람 살이도 그러하지 않으랴. 누구라도 만나서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마음과 몸이 해어질 수도 ..

청우헌수필 2026.08.17

난병 일기(9) -성공의 조건

난병 일기(9)-성공의 조건 오늘 치료는 성공했다. 관장 상태도 적절하고 내장된 소변량도 적정하여 치료가 잘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양성자가 목표 위치에 잘 도달하여 제 에너지를 병소에 집중적으로 발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무슨 어려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듯한 안도감이 몸을 녹게 했다. 어제는 실패했었다. 첫 번째 양성자 치료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해주는 자세대로 꼼짝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다가 잠깐 떠보니 원통형 방의 천장이 두 갈래가 져 서로 엇바뀌며 돌고 있고, 내려다보는 기계는 나를 덮을 듯 내려오다 올라가고 했다. 첫 치료 때 소음으로 들렸던 소리들은 천장이 움직이는 소리였던 것 같다. 다시 눈을 감고 치료가 잘되고 있는 상상에 젖었다. 소리가 멎더니 일어나라 했다. 관장이 ..

청우헌일기 2026.08.16

난병 일기(7) -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난병 일기(7)-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옷을 벗고 큰 타올로 몸을 가리고 CT실 촬영대에 누웠다. 방사선 치료를 위한 모의 치료 과정이라 했다. 촬영 기사가 방광 주변에 무얼 바르고 한참 살피더니 일어나라 했다. 소변이 너무 많이 차 있다며 안쪽에 눈금이 새겨진 종이컵을 쥐여주었다. 눈금 어디까지 소변 보고는 변기에 쏟고 오라 했다. 옷을 걸치고 화장실로 가서 그렇게 하고 와 다시 누웠다. 눈을 감았다. 움직이지 말라 하고는 몸을 기계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라 했다. 관장이 덜 되어 있어서 약 처방해 놓았다며, 약을 받아 20분 동안 관장하고 다시 오라 했다. 대기실로 나오니 나를 바라지하는 딸이 벌써 알고 병원 약국에 가서 관장약을 받아 왔다. 화장실로 가서 투약하고 나와 ..

청우헌일기 2026.08.03

댑싸리 전설(6)

댑싸리 전설(6) 고샅 양쪽 길섶 댑싸리 자리에 잡풀이 잔뜩 솟았다. 뿌리가 깊어 잘 뽑히지도 않는 바랭이가 대부분이다. 풀에 묻혀 댑싸리가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 같다. 더 두고 볼 수 없어 호미로 땅을 찍으며 풀을 뽑아나갔다. 댑싸리가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뽑고 있는데 고샅 끝 동네 길로 누가 지나가고 있는 기척이 들린다. 허리도 펼 겸 일어나 집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 운동을 하며 마당을 한참 서성이다가 다시 고샅으로 나가 계속 뽑았다. 댑싸리에 난 풀 뽑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내 차린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가다가 보고 나한테 말을 걸어올까 봐서다. 거기 풀은 왜 뽑느냐, 곡식도 아닌 댑싸리를 뭐 하려고 그리 힘들여 가꾸느냐며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댑싸리를 ..

청우헌수필 2026.07.08

친구를 만나러 간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 난병을 앓고 있다. 아직 별 큰 증상은 없지만, 그냥 두면 어느 땐가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 상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치료를 받아나갔다. 병소를 확인하는 몇 단계 진료를 거쳐 약물과 주사 치료를 시작했고, 양성자 치료 일정까지 잡아 놓고 있다. 양성자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병소 부위와 인근 장기를 떼어놓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질 주입술 치료를 하고, 병소 조직에 정확하게 양성자를 전달하기 위한 모의치료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그러고 난 한 달 뒤 본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했다. 쉽지 않을 그런 치료를 받아나가자면 치료 과정마다 후유증도 있을 것이고, 복용해야 할 약도 많을 것이어서 움직임에도 적잖은 제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치료 후에도 경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

청우헌수필 2026.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