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나이라는 생물학적 제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스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볼 수도 있고,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라는 자기만의 삶의 속도를 중시하고자는 긍정적인 심리를 느낄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나는 늙어가고 있다.’라는 자각과 함께 노화에 대한 저항 심리를 볼 수 있다. 또한 ‘아직 나는 건재하다.’라는 사실을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선언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려는 심리적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높이는 그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노화를 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반향이 아닐까.
나이는 죄가 없다. 나이는 나이이지 숫자가 아니다. 나이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적은 나이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속담에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노인에게는 많은 지혜가 담겨 있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노인의 나이 속에는 가치 있는 지혜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에는 갖은 부조리며, 온갖 풍파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반면교사가 되어 남의 교훈과 지침이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삶이 더욱 여물어지기도 하고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마치 갯가의 거친 돌이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하고 매끄러운 돌이 되어 가듯이.
나이가 많아지다 보면 여물어지고 너그러워질 수 있는 마음과는 달리 몸은 허물어지고, 쪼그라든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가 다르다기도 한다. 그럴수록 나를 지켜주기 위한 몸의 수고로움이 느껴진다. 몸은 마음, 정신의 그릇이요, 갑옷이 아니던가. 그것들을 붙들어 주려고 몸은 얼마나 안간힘을 써 왔던가. 나이가 들수록 몸이 눈물겹게 고마워질 때가 있다.

노인이 비우는 술병은 든 술병보다 빈 술병이 더 무거울 수가 있다. 술이 비어 가는 자리에는 웃음도 눈물도 들고, 사랑도 미움도 들고, 화목도 불화도 들고, 보람도 회한도 들고, 수치도 울분도 들고, 평온도 불안도 들고, 외로움도 그리움도 들고……. 살아오면서 안으로만 쟁여왔던 모든 것들이 어느 날의 빈 술병 속으로 들어 빈 병이 아주 무거워질 때가 있다.
그 빈 병을 채우는 것들이란 굴곡지게 살아온 삶의 간곡한 이력일 것이다. 그렇지만, 노인은 그런 것들 때문에 달뜨거나 소용돌이치지는 않는다. 그렇게 살아온 자취를 돌아보며 잔잔한 미소 한번 지으면 된다. 그 미소 속에 모든 것을 다 묻을 수 있는 사람이 노인이다.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나’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우기는 사람은 아직도 세상의 짐을 더 지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더 지고 싶으면 지면 된다. 지다가 내려놓고 싶거나 내려질 때 내려놓으면 된다. 그렇지만 욕심에 자유가 구속되어, 그 구속을 사는 사람은 노인이 아니다. 노인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 자유는 늙음이 준 선물이 아닌가.
탈무드에서 “청년은 눈으로 보고, 노인은 마음으로 본다.”라고 하듯, 노인은 무엇을 보든 마음의 눈으로 먼저 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게 많은 사람은 노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눈으로 봤던 많은 것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눈보다 욕심이 적다.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욕심이 좀 걸러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남의 눈빛에 나를 맞추느라 정작 나를 돌아보는 일은 지나쳤을 수 있고, 남의 소리를 듣느라 내 속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을 수 있다. 노인은 남을 쫓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세상의 소음을 따라가는 대신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또한 나이가 준 선물이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선사하듯, 잘 산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다준다."라고 했다지만, 이미 가버린 생애는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일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남은 날이나마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볼 일이다. 늙어가다 보면 외로울 수 있지만, 외로움을 자유와 평화가 있는 그윽한 고독으로 바꾸어도 볼 일이다.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겁낼 일은 아닌 것 같다.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을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현존하지 않으며, 죽음이 현존할 경우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 했다지 않은가. 살아있는 동안은 죽을 염려가 없다는 말이다. 이제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이렇듯 나이는 늙음의 정도를 나타내는 노화지수老化指數라 할 수 있지만, 그 노화 곧, 늙음 속에는 많은 선물이 들어있기도 한다. 그 지수란 늙음이 간직한 선물의 양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 예비 노인이지 않은가. 늙음을 잘 보듬고 다듬어갈 일이다.
역시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부정하기엔 기려야 할 것이 많은 노화지수다.♣(2026.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