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저녁노을을 바라며
따사로운 저녁노을을 바라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떨어지는 건 기력이고, 멀어지는 건 사람들인 것 같다. 딴은 건강 관리를 한다고 해도 몸의 모든 기능이 전 같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다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사람 대할 일도 그렇다. 떨어지는 기력과 함께 활동량도 줄어들다 보니 찾아갈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드물어져 가고 있다.
기운을 추슬러 보겠다고 몸을 움직여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좋다는 걸 챙기고 챙겨주어 먹어 보기도 하지만, 그리 녹록지는 않다.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도 없다. 붙이도 모두 흩어지고, 권속도 떠나갔다. 남은 건 쇠잔해져 가는 기력과 구슬리기 쉽지 않은 외로움뿐이다.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살아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고단한 날 속에서 찾아갈 곳이 있고 찾아올 사람이 있다면, 몸에도 마음에도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영 없지는 않아 그래도 조금은 위안스럽다. 일상을 고적하게 보내다가 매주 한 번씩 차를 타고 나가, 글쓰기 공부를 같이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큰 활력을 준다. 글을 통해 서로 곡진한 삶들을 나누다 보면 사람들이 모두 살가워진다.
그들 가운데는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나에게로 가끔씩 찾아와 주는 이들도 있다. 반갑고도 유정하다. 차담과 함께 글 향기도 나누며 속내를 주고받기도 하고, 내 삶을 담고 있는 곳을 함께 거닐며 소담스레 아롱질 기억들을 심기도 한다. 생애에 서려 있는 외로움 탓일지 그렇게 하다가 헤어지고 나면. 한동안은 무언가 비어버린 듯한 공허감에 젖기도 한다.

그 공허감이란 무엇일까. 서운함일 듯도 하고 그리움일 듯도 하다. 그 서운함이며 그리움이란 어찌 오는 것일까. 정 때문일 것이다. 오고 간 인정 때문일 것이다. 인정과 헤어진 게 서운하고, 헤어져 있는 인정이 그리운 것이다. 그 인정이 마음에 결을 일게 한다. 그 인정이란 무엇일까. 애정일까, 우정일까.
애정과 우정의 정체가 다시 돌아 보인다. 애정과 우정은 모두 상대방을 위해 나를 내어주고 싶은 이타심에서 출발하는 마음일 것이다. 서로 깊은 유대감을 이루면서 삶의 한 부분에 대한 교집합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언가 따뜻하고 정겨운 것들을 서로 나누어 가지면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일 것도 같다.
애정과 우정이 그렇게 한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애정은 대체로 단 한 사람만을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일 수 있지만, 우정은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마음속에 간직할 수도 있다. 애정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감정으로 영육이 일체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 할 수 있다면, 우정은 잔잔하고 유유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함께 흐르고 싶은 마음이라 할까.
프랑스 격언에서는 “사랑은 눈을 멀게 하지만, 우정은 눈을 뜨게 한다.”라기도 하고. 괴테는 “사랑은 지배하려 하지만, 우정은 자유를 준다.”라 하기도 했다. 여기서 ‘사랑’이란 물론 애정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애정과 우정을 색깔에 비유해 본다면, 애정이 삶에 강렬한 색채를 더해주는 빨간색이라면, 우정은 지치지 않고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초록색 숲과 같다 할까.
애정과 우정이 다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감정이라 한다면,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애정과 우정이 다 있을 수 있다. 동성 간에는 애정을 줄수록 우정이 깊어질 수 있지만, 이성 간에는 우정을 쏟다 보면 애정으로 변할 수도 있고,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어떤 정이든 서로의 삶과 감정선을 존중할 때 그 정이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돌아보면서 내 마음의 방문을 가만히 열어본다. 나는 지금 황혼 녘에 홀로 서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저 해는 붉고도 푸른 꿈을 안고 솟아올라 세상을 비추어 나가면서 하늘 한가운데 이르러 세상을 다 안아 보기도 하다가, 이제는 고운 빛을 뿌리며 조용히 내려앉고 있다. 저 빛 속에 내 환영이 어리기도 한다.
이제 내가 그리운 것은 세상을 불사를 듯 붉게 타는 빛이 아니라, 내 강둑 산책길에서 늘 보는, 맑고 푸른 빛으로 은은히 흐르는 강물 같은 빛이다. 그 강물 빛 속에서 다소곳이 미소지으며 나를 보고는, 살포시 걸어서 나에게로 와 주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을 더 소망할까. 내 마음의 방 안에 그런 사람을 살게 하고 싶다.

어느 시인은 “늘, 혹은 때때로 /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조병화, 「늘, 혹은」)라 했다. 그 생기를 위해서라도 나는 지금 맑은 우정의 사람을 그리워하고 싶다. 그 사람이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라는 그 시인의 감탄사 속으로 들어와 주기를 바라고도 싶다.
그 바람이 나의 것이 될 때 내 잦아들던 기력도, 나를 시나브로 죄어오는 외로움도 조금은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도 같다.
눈을 그윽이 뜨게 하면서 아늑한 자유를 품고 있는 그 따사로운 저녁노을을 그리며, 오늘도 해거름 강둑길을 느긋이 걷는다. 강에는 맑고 푸른 물이 흐르고 있다. ♣(202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