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박탈당한 그리움

이청산 2025. 7. 16. 14:05

박탈당한 그리움

 

  오늘도 마을 공원 숲속으로 든다. 산책길에 늘 거쳐 가는 곳이다. 소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회나무 노거수가 우거진 숲속 한가운데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당이 있고, 그 옆에는 상사화가 모여 꽃을 피우는 곳이 있다. 아주 오래전 마을 어느 부인네가 어디에서 몇 뿌리 가져와 옮겨 심은 것이라 한다. 그 꽃이 간직하고 있는 사연을 알고서 심은 것일까.

  상사화는 알뿌리에서 순이 돋고 잎이 난다. 잎은 비늘줄기에 나 긴 타원형으로 치렁하게 자라다가 오뉴월 무렵부터는 조금씩 말라 든다. 칠월이 되면 완전히 마르고 삭아서 땅속으로 스며들 듯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꽃대가 솟는다. 꽃대는 솟으면서 끝자락에 꽃을 품다가 마침내 몇 갈래로 홍자색 꽃을 아리따이 피워낸다. 꽃 진 꽃대 끝에 열매가 맺히긴 하지만 여물지는 못한다.

  잎은 꽃 모르게 꽃을 그리고, 꽃은 잎은 잎 모르게 잎을 그린다. 서로 애달픈 짝사랑에 빠져 있다고 할까. 잎은 꽃을 그리며 세상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지만, 그리움에 지친 탓일지, 햇볕 뜨거워지는 어느 날부터 잎 끝자락부터 말라 들어 마침내는 제 난 자리로 다시 들 듯 잦아들고 만다. 제가 그리던 꽃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그즈음 잎이 애간장을 사르며 져버린 줄이나 아는 걸까. 꽃이 제 피어날 자리를 위해 꽃대 애순부터 솟구쳐 낸다. 순이 고개를 내미는가 싶으면 어느새 꽃대로 성큼성큼 자라 오른다. 사나흘이면 꽃대 끝에 연분홍, 진분홍이 섞이면서 홍자 빛이 되어 여섯 꽃잎 몇 송이 꽃을 수줍게 피어낸다. 그리 피기를 서두르는 것은 무엇을 바라서일까.

  꽃은 어찌해 하늘을 바로 바라지 못하는가. 잎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서둘러 피어올랐건만, 저를 싸안아 주어야 할 잎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잎을 찾는 몸짓일까. 그 서러움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애절한 마음에서일까.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먼 허공만 하염없이, 속절없이 바라고 있다.

  길쭉한 꽃대가 그리 튼실하지는 못한 것 같다. 지나는 바람결에 조금만 흔들려도, 혹은 제 몸피를 스스로 못 이긴 탓인지, 쉽사리 넘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러지기도 한다. 제 몸의 무게라 하는 것이 그리움의 무게는 아닐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넘어지기도 하고 부러지기도 하는 건 아닐지-.

 

그 꽃 지고 나면 실없는 씨방이 맺히는 듯하다가 그것도 옳게 맺히지 못하고 이내 말라 들고 만다. 상사화의 생애란 이렇듯 부질없이 없는 듯하지만, ‘그리움’ 하나만은 절절히 남기고 간다. 어쩌면 상사화는 그립기 위해 피어나 그리움으로 살다가 그리움으로 죽어가는 ‘그리움’의 화신일지 모르겠다. 그리움이란 언제나 설레고도 눈부신 게 아니던가.

  상사화, 그 그리움의 생애를 그리며 논두렁 길을 지나 공원으로 향한다. 한창 자라나고 있는 벼가 싱그러운 초원의 삽상한 정감에 젖게도 한다. 초원의 그윽한 정감을 미처 떨치기도 전에 이내 먹먹해진다. 공원 숲속의 피폐해진 상사화밭 풍경이 칼날로 긋듯 가슴을 아리게 하기 때문이다.

공원 숲에 풀들이 자욱해지면 해마다 두 번씩 동네 사람들의 울력으로 풀베기하여 공원을 말끔하게 만든다. 그 말끔한 풀베기가 올해는 돌이키기 힘든 상처가 되어버렸다. 과수원을 경영하고 있는 부지런한 이장이 자기 밭에서 쓰는 네발 예초기로 모든 풀을 삽시간에 깡그리 밀어버렸다. 상사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눈엔 과수가 아니면 모두 쳐 없애야 할 잡초였다. 다른 사람들에겐 베어진 풀을 긁어내라 했다.

  그때 상사화는 무성하던 잎이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말라가기 시작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 잎이 칼날 바퀴에 짓이겨지고 말았다. 상사화가 잎이 말라가는 것은 꽃을 향한 그리움의 간절한 몸짓이 아니던가. 그리움을 삭히고 절여가며 말라든 자리에 꽃도 잎을 그리며 피어나는 것을, 잎은 그리워할 자유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움을 무참히 박탈당한 것이다. 

  이제 그리움의 자유를 빼앗긴 저 상사화가 꽃을 피워 낼 수 있을까. 피워 낼 뜻이며 힘을 차릴 수나 있을까. 그리움에는 힘이 있고, 생기가 있고, 의욕이 있고, 희망이 있다. 그 솟는 힘과 생기로, 그 부푸는 의욕과 희망으로 치렁한 잎을 돋구어 내고, 눈부신 꽃을 피워내지 않았던가. 이제 뿌리만 겨우 남은 상사화는 무엇에 정을 얻어 꽃을 피워낼 수 있으랴.

  야속하고 야멸차다. 잎과 꽃의 저 순결한 짝사랑을 그리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이 꽃 이리 짓밟듯, 혹 사람이 사람에게 그리하는 일은 없을까. 남의 그리움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그 사랑을 무참하게 하는 일은 없을까. 남의 순결한 그리움을 짓이겨 놓고, 그래서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는 일은 없을까.

  저 짓이겨진 상사화를 보며, 저 박탈당한 그리움을 보며, 무상하고 무렴한 인간의 일을 돌아본다. 인간 세상일이 아니기를 바라기도 하면서. ♣(2025.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