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 2

남은 잔은 비우고 가세

남은 잔은 비우고 가세 아침이 참 눈치 없다. 원하는 사람이든 원치 않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찾아온다. 아침은 정녕 그런 분별을 못 하는 걸까. 기다리는 사람에겐 기꺼이 와주고, 기다리지 않은 사람에겐 슬쩍 비켜 가 주는 체면은 없는 걸까. 세상은 꽃밭 천지만도 아니고 가시밭 천지만도 아니다. 꽃밭이다가도 문득 가시밭이 다가서 오기도 하고, 가시밭인가 싶더니 저 너머에 꽃밭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 것이 삶이라 했던가. 꽃밭을 살 때는 내일이면 또 어떤 꽃이 필까 싶어 밝은 아침이 어서 오기를 설렘으로 바라기도 하겠지만, 가시밭만 이어진다 싶을 때는 아침이 나의 것이 되지 않기를, 그래서 고난의 한세상이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주기를 간곡히 비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

청우헌수필 2023.05.28

춘서春序

춘서春序 다른 나무는 한 달 전쯤에 꽃을 다 내려 앉히고 잎이 돋기 시작하여 벌써 무성한 녹음을 이루고 있는데, 아직도 꽃을 피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벚나무가 있다. 그 나무 앞에 서면 꽃을 피워내기 위해 용을 쓰는 소리가 쟁쟁히 들릴 것도 같다. 강둑에 줄지어 선 벚나무는 마을의 큰 자랑거리다. 봄이 오면 어느 나무 할 것 없이 일매지게 꽃을 터뜨려 화사하고도 해사한 꽃 천지를 이룬다. 작년부터는 나무 아래 조명등을 설치하여 꽃이 피어 있는 동안은 밤낮으로 화려한 꽃 잔치를 벌인다. 꽃잎이 지고도 붉은색 꽃받침이 남아 또 한 번 꽃을 피우듯 온통 붉은 꽃 세상이 된다. 강둑을 다시 장식하면서 강물에 꽃 그림자를 드리운다. 꽃받침이 떨어진 자리에 뾰족뾰족 잎눈을 틔우다가 이내 풋풋하고 싱그러운 ..

청우헌수필 2023.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