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4

풀숲 길이 좋다

풀숲 길이 좋다 오늘도 아침 산책길을 걷는다. 두렁길 지나 마을 숲에 이르러 깊은숨 들이쉬며 체조하고 강둑길에 오른다. 강둑길을 걸으며 물도 보고 풀꽃도 보다가 그 길이 끝나면 산을 파헤쳐 길을 낸 곳을 오르고 내려 골짜기로 든다. 나의 산책은 변함없지만, 걷는 길이 많이 변했다. 지난날의 강둑길이 그립다. 산이 막아서는 길 끝까지가 풀숲 길이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풀잎에 맺힌 이슬에 바짓가랑이가 젖기도 하고, 도깨비바늘을 비롯한 풀씨들이 달라붙고, 칡이며 환삼덩굴이 발목을 걸어 성가시게도 했다. 그래도 그 길이 좋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귀찮게 여겨 관에다 진정했다. 어느 날 갖가지 장비를 동원하여 풀숲을 걷어내고 회반죽을 들이부었다. 바짓가랑이도 안 적시고, 덩굴이 발목을 잡지도 않는 길이 되었..

청우헌수필 2022.10.29

아름다운 예술 섬을 바라며

아름다운 예술 섬을 바라며 『울릉문학』지가 15집을 내게 되었다니 감회가 각별하다. 연간지로 내는 것이니 그만한 햇수의 세월이 쌓였다는 것이다. 언제 세월이 그리 흘렀을까. 나는 지금도 울릉도가 그립다. ‘신비의 섬’ 그 신비가 그립다. 나의 그 그리움 속에는 소곳한 보람도 자리하고 있지만, 아릿한 기억의 희미한 그림자도 함께 어려 있다. 두 번째로 울릉도 발령을 받았을 때는 주위 사람들 모두가 천만뜻밖이라 했다. 울릉도란 승진을 위해서 가거나 승진하여 초임 발령으로 가는 곳인데, 이미 승진하여 초임도 겪은 사람이 왜 울릉도로 가는지 모르겠다며, 의문과 걱정과 위로가 함께 섞인 말씀들을 전해왔다. 나만의 비밀스런 일을 그들이 알 리가 없다. 그 몇 해 전에 울릉도로 발령받아 해포를 살다가 나왔었다. 바다..

청우헌수필 2022.10.11

나무의 숙명

나무의 숙명 이 일 배 오늘도 산을 오른다. 오르며 묻는다. 나는 왜 지금 이 산을 오르고 있는가.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떠한 길을 걸어 이 산에 이르렀는가. 그 ‘어디’는 어떻게 얻은 것이고, 그 ‘길’은 또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얼마나 많은 세월의 테를 감으며 여기까지 왔는가. 나는 지금 나무를 보러 오르고 있다. 나무는 나의 거울이다. 나는 태어난 곳에서부터 왔다. 태어나보니 태어난 곳이었다. 아득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순로가 손잡아 끌기도 했지만, 험로가 밀쳐내기도 하는 길을 힘겹게 걷기도 했다. 나무를 본다. 저도 이곳을 가려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람에 불리다가, 혹은 어느 새의 부리를 타고, 또는 뉘 몸에 의지해서 땅에 떨어지고, 그 자리가 제자리 되어 싹이 트고 자랐을 것이..

청우헌수필 202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