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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무소유

나무의 무소유 이 일 배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를 보러 오른다. 나무는 내가 보려 하는 그 자리에 언제나 서 있어 아늑하게 한다. 늘 생기로운 모습으로 서 있어 더욱 아늑함을 준다. 막 잎이 날 때든 한껏 푸르러질 때든, 심지어 잎 다 지우고 맨몸으로 서 있을 때조차도 고즈넉한 생기가 전류처럼 느껴져 온다. 나무는 눈을 틔워 잎을 피워내던 시절을 거치면 푸름의 철을 맞이하게 된다. 잎이 자랄 대로 자라 푸를 대로 푸르러진다. 그즈음에 이르기까지 딴은 몹시 분주했을 것이다. 물을 빨아올리고, 햇볕을 조아려 받아 생체 조직을 작동시켜 엽록소의 빛깔로 드러내기까지 얼마나 분망했을까. 나무에게 욕망의 철이 있다면 바로 이 시절이 아닐까. 푸름에 대한 욕심, 생장에 대한 푸른 욕심이다. 나무의 그 욕심은 여기..

청우헌수필 2022.09.24

글 쓰는 병

글 쓰는 병 -이규보의 ‘詩癖’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나 아내의 눈에 비친 나는 종일을 한가롭게 빈둥거리다가 해거름이면 산에나 오르고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내나 남들처럼 땀 흘려 흙을 쪼거나 무얼 정성 들여 심거나 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번다했던 생의 한 막을 거두면서 이 한촌을 찾아올 때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서였다. 텃밭 가꾸기는 흙을 좋아하는 아내의 몫으로 미루었다. 아내도 위하고 나도 위한다는 변명과 함께 그 신념(?)을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준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남들이 그리 보는 것처럼 마냥 시간만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 강둑을 거닐며 물이며 풀꽃, 해거름 산을 오르며 나무와 숲을 보면서 느꺼워해야 하고, 신문으로 뉴스로 세상 소식..

청우헌수필 202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