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일기

산수유 다시 피다

이청산 2006. 5. 14. 17:47

산수유 다시 피다
 - 마성일기·34



 사택에 피어난 산수유꽃
  사택 마당에 서 있는 산수유가 드디어 꽃망울을 터트렸다. 함께 서 있는 느티나무며, 호두나무며, 은행나무 들은 눈틀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데, 산수유는 시나브로 꽃눈을 틔여 가고 있다. 가느다란 가지 곳곳에 까만 점으로 달려 있던 망울의 빛깔이 조금씩 맑아지는가 싶더니 쪽이 지면서 깨알같이 잔잔한 노란 꽃술이 빼곡이 머리를 내민다. 저 작은 망울 안에 저리 많은 꽃술을 보듬고 있었구나!

마성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라 남쪽 지방보다 더 춥기도 했지만, 지난날의 탄진이 아직도 허공을 날아다닐 듯한 폐광지역의 겨울이라 다른 곳보다 한층 더 을씨년스러웠다. 삼십 오륙 년 전, 탄광이 왕성하게 가행되면서 중학교가 문을 열었다. 한창 많을 때는 아이들이 천 명도 넘었다고 하지만, 탄광들이 문을 닫아 버린 지 십 오륙 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백 명도 채 안 되는 아이들만이 교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커다란 학교에 많지 않은 학생들, 그나마도 방학이 되어 텅 비어버린 학교는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바람에 나뭇가지 갈리는 소리만이 얼어붙은 대기를 몸서리치게 가를 뿐이었다.

삼십여 년 전, 학교 안에 관사 하나를 지었다. 여남은 평이 될까 말까한 좁다란 터에 작은 방 둘과 조그만 마루를 넣은 슬래브집이었다. 학교에 아이들이 차츰 줄어가는 세월과 더불어 관사도 점점 낡아갔다. 문을 몇 겹으로 닫아도 찬 기운은 작은 틈도 놓치지 않고 방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틈이 아니라도 한기는 사방의 벽에서 스며났다. 지을 당시엔 단열재도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목욕탕도 없었던 것을 나중에 덧붙여 지어놓았다. 목욕탕의 한기는 방보다 더했다. 화장실을 갈 때에도 추위를 막아낼 수 있는 든든한 무장을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관사는 학교와 같은 시공을 겪어왔지만, 거처의 역사는 학교의 역사와 함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객지 사람이 관사의 주인으로 들어왔을 때는 거처했겠지만, 지역 사람이 주인이 되었을 때는 가까운 자택을 두고 굳이 관사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은 늘 거처해야 훈기도 나고, 깨끗해지고, 수명도 오래 가는 것이다. 관사는 비어 있거나 살림집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온 세월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들어 손을 많이 보긴 했지만, 손질로 추위를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는 구조는 이미 아니었다. 그리하여 사택은 춥고도 긴 겨울을 보내야했다.

마당의 산수유는 겨울을 견뎌오는 사이에 등걸 껍데기는 추위에 떨다못해 흙일에 마구 찌든 농투성이의 손등 같이 쩍쩍 트고 갈라졌다. 가지는 차갑게 부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부대꼈다. 가지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점들도 가지를 따라 흩날렸다. 이 긴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을까, 안쓰럽게만 보였다. 그러나 산수유는 그 추위를 떨면서도 봄을 예비하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갈라 터진 껍질 속에서도 새 꽃을 피우기 위한 생명의 역사를 부지런히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이 긴 꼬리를 서서히 거두어 가고 있을 무렵 망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란 꽃술을 밀어 올렸다. 다른 꽃나무들은 아직도 깊은 겨울잠에 잠겨 있는데, 산수유는 봄의 전령사인 양 꽃눈을 살포시 내밀었다. 마성 살이를 제일 먼저 축복해 주던 작년 봄의 그 산수유가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다. 산수유의 꽃말이 '지속', '불변', 혹은 '호의를 기대한다'라고 했던가. 그 누군가의 변치 않는 호의를 기대하고 싶은 봄의 꽃, 산수유가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머지않아 저 꽃술들은 갓난 새 날개 펴듯 하나하나 꽃잎을 피워낼 것이다. 샛노란 꽃 무리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이 봄을 눈부시게 장식할 것이다.

 사택의 봄은 산수유로부터 왔다. 산수유 조그만 꽃눈들이 사택의 겨울을 밀어냈다. 춥고도 긴 겨울 터널을 벗어났다. 긴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 추위의 터널 속을 지나온 지난 겨울은 혼몽으로 이어지던 잠인 듯했다. 한껏 팔을 벌려 기지개를 켠다. 상큼한 대기가 폐부를 파고든다. 그 지난한 꿈들이 내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 있었기로 그러한 꿈들 또한 내게로 올 수 있지 않았던가. 샛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를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그 꿈들은 곧 이 봄을 더욱 생기 있게, 한층 따뜻하게 맞으라는 전언이었을 것이라고.

산수유 저리 피듯, 나도 꽃 하나 피우고 싶다. 꽃 피우는 봄을 맞고 싶다. 따뜻한 꽃을 피우고 싶다. 밝고 맑은 꽃 하나 피우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용서하고 싶다. 화해하고 싶다. 포옹하고 싶다. 그 추웠던 사택의 겨울과도. 내 삶의 터 마성의 봄에-.♣(2006. 3. 20)


더보기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마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도 보고 별도 보고  (0) 2006.06.15
아내를 매수하다  (0) 2006.06.02
녹음의 그늘  (0) 2006.05.25
봉암사 가는 길  (0) 2006.05.14
주지봉 전설  (0) 2006.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