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당분간 끊어야겠어요

이청산 2023. 3. 12. 13:47

당분간 끊어야겠어요

 

 

  권 선생께서 당분간 술을 끊어야겠다고 했다. 그 말씀에 나는 절망을 안아야 했다.

  생애의 한 막을 내린 지 십수 년,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으로 한촌 산 마을을 찾아와 발을 내렸다. 푸른 산이며 맑은 물만 보며 살면 될 줄 알았다. 얼마 동안은 그렇게 살았다. 살 만했다. 여태 어지럽기만 했던 머릿속이 소쇄해지는 듯도 했다.

  그런 재미로 살아가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사람이 그리워졌다. 산도 좋고 물도 좋지만, 그 자연 속에 자연 같은 사람도 있으면 더욱 좋겠다 싶은 마음이 소록소록 피어났다. 술잔이라도 함께 들며 살아온 일이며 한세상 살아갈 일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싶었다. 사람 들끓는 번잡한 세상을 벗어나고파 이리 살고 있으면서 이 무슨 잔망한 가탈인가.

  자연으로 들어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도 삽상한 일이지만,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기로움도 멀리할 수 없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아도 될 양이면 사랑은 왜 하고 그립고 외로운 마음은 왜 생기는가. 사회란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곳이거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우리는 얼마나 불편과 고통을 느꼈던가.

  그렇게 사람을 그리워하다 보니 어찌어찌하여 권 선생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권 선생은 나보다 연장이시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어떤 걸림도 없으셨다. 예절도 존중하지만, 마음을 여는 데도 인색하지 않으셨다. 거의 주일에 한 번쯤은 만나 막걸릿잔을 함께 나누며 술잔이 익어갈수록 우리의 소담, 환담도 무르녹아 갔다.

  권 선생은 젊은 시절에는 화약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던 분이었다. 지역에 광산이 한창 가행되고 있을 때는 곳곳의 초빙을 받기에 바쁘셨다고 했다. 안전하게 장착하여 필요한 만큼 폭파되면서 터져 나오는 화려한 불꽃에 대한 기억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다 했다. 어쩌면 생애를 그런 불꽃같이 사신 분인 것 같았다.

  청년 시절 지방 정치에 잠시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지금은 정치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나라 정치를 걱정하는 마음은 우리의 걸쭉한 안주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세계로 나아가 국제 평화에 관한 관심도 마다치 않았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사람은 예술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이태백과 두보를 즐겨 외기도 했다.

  내가 권 선생과 만나는 일은 나무가 좋아 산을 오르는 일이며 물이 좋아 강둑을 즐겨 걷는 일과도 다르지 않았다. 자연의 또 한 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다. 우리 만남의 이름을 ‘주막회’로 하자 하니 ‘좋다!’ 하셨다. 일주일마다 한 번은 만나 막걸릿잔을 나누자는 뜻이 아니냐며 웃으셨다. 이 이심전심의 이 마음이 자연이 아니고 무엇인가.

  권 선생과 연을 맺은 지 십 년이 가까워지는 사이에 권 선생께서는 두어 해 전에 산수傘壽의 언덕을 넘어서고, 나는 희수喜壽를 눈앞에 둔 처지가 되었지만, 우리의 만남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권 선생께서는 “당분간 술을 끓어야겠어요.”라 하셨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었다.

  “뭐라고요? 저는 어떡하라고요!” 절규하듯 되받았다. 지금 누가 나에게서 산과 나무, 강과 물을 빼앗아 간다면 살 수가 없듯이 권 선생과 함께 술잔 속에 담아내던 그 고담준론의 환희가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어디서 누구와 이 고단 생애를 엮어가야 한단 말인가. 천인단애 절벽 앞에 내쳐지는 듯했다.

  나이 탓인지 숟가락을 들려면 손이 자꾸 떨려와 병원엘 같더니, 혈압도 높고 뇌 질환 우려도 있어 당분간 금주를 권하더라고 했다. 증세가 심하지 않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도 한다 했다. 오랜 시간 동안 권 선생과 나누었던 담화들을 돌아보면, 권 선생께서 살아오신 여든 남은 생애가 그리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화약 전문가가 되기까지 때로는 해외도 유랑하며 도전과 개척의 삶을 거듭하며 살아야 했고, 때로는 직무를 수행해나가다 보니 심지어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가야 했다고도 한다. 그런 고난을 엮어 살아온 세월의 잔해들이 오늘의 병력으로 나타났을지도 모를 일이라 했다. 이따금 읊조리던 두보(杜甫, 712~770) 시 한 구절이 문득 돌아 보인다.

  “간난(艱難)애 서리 같은 귀믿터리 어즈러우믈 심히 슬허하노니 / 늙고 사오나오매 흐린 숤 잔(盞)을 새려 머믈웻노라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登高」)”

  세상살이의 어려움에 몰골이 늙고 사나워 좋아하는 술도 새삼 끊고 지낸다는 말이다. 두보의 모습에 권 선생의 모습이 겹쳐진다.

“어쩌겠소. 우리가 좋아하는 이 막걸릿잔 주담을 좀 더 오래 즐기기 위해서라도 조섭은 좀 해야 하지 않겠소? 허허!”

  허공에 흩어지는 권 선생의 웃음소리는 얼핏 습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좀 더 오래 즐기기’ 위해서라는 말씀에 새로운 희망을 걸고도 싶었지만, 세월이 또 우리에게 어떤 그림자를 남겨줄지 모를 일이다.

  “그럽시다! 건강해야 술도 잘 먹을 수 있지요. 술 잘 먹는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하하”

  그렇게 우린 헤어졌지만, 다만 술과 헤어질 뿐 우리의 담론은 늘 살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함께 지녔다. 저 솔잎이 늘 푸른 것처럼, 저 강물이 늘 흐르고 있는 것처럼. 어차피 우리 사는 것도 ‘당분간’이거늘, 그 당분간이 무엇이 그리 절망스러우랴.

  권 선생님, 그래도 그 ‘당분간’이 좀 짧을 수 있도록 애써주십시오. 하루빨리 우리의 술잔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20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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