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불의지병

이청산 2023. 2. 13. 21:41

불의지병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머리가 빙 돈다. 정신이 어지럽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방이 빙빙 돈다. 몸이 방 따라 마구 구른다. 일찍이 겪어 보지 못했던 일이다. 한참 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일어서려는데 몸을 바로 세울 수 없다.

  서가를 잡고 의지해 겨우 일어섰다. 벽을 짚으며 쓰러질 듯이 화장실로 가서 양치하고 나와 물을 두어 잔 들이켰다. 맨손 체조했다. 정신이 약간 수습되는 듯했다. 세수하고 책상에 앉았다. 조금 진정되는 듯하여 잠시 책을 읽었다. 

  아침이면 늘 하는 대로 산책길을 나섰다. 두렁길 지나 마을공원에서 체조하고 강둑을 걸었다. 술 취한 사람처럼 걸음이 비틀거린다. 중심 잡기가 어렵다. 이대로 주저앉아 땅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튿날, 그 이튿날도 같은 증세가 반복되었다. 친구의 의사 자제에게 무슨 과에 해당하는 이상이냐 물었더니 이비인후과나 신경과에 해당하는 증세일 것 같다 했다. 달팽이관이나 뇌를 검사해봐야 할 것이라 했다. 병원 길을 나섰다.

  어떤 결과를 받게 될까.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이 증상이 계속된다면 몸의 중심 잡기뿐만 아니라 언어가 끊기고 기억 활동이 마비되는 증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바엔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증명을 받아 놓긴 했지만, 대비할 일이 그뿐이랴.

  다행히도 나에겐 걸려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를테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라든지, 갚아야 할 채무 같은 것도 없다. 아이들이야 저마다 살 도리며 가정을 지니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아내도 나 없이 살아가는 데 별 불편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한동안 생각날지는 몰라도, 살 만큼 살다 간 사람이라 곧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남겨놓은 책들이며 여러 가지 집물들이야 하늘로 날려 보내면 되지 않으랴.

  걸리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달거리로 어김없이 만나 술잔에 정을 띄우던 친구들이며, 이리저리 따뜻한 관계를 맺어 왔던 사람들을 두고 떠나기가 아릿하다. 그중에서도 수필 공부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더욱 걸린다. 수필이란 원래 자기 고백의 문학이 아니던가.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미움도, 자랑도 부끄러움도 그대로 털어놓으며 함께 울고 웃던 사람들, 내 늘그막 생애에 따뜻한 무늬를 새겨 주던 사람들이다.

  이렇게 구업(口業), 신업(身業)이 삭고, 의업(意業)을 끝으로 조용히 피안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어디서 어떻게 쓰러질지는 몰라도 따뜻했던 사람들의 기억은 안고 갈 것이다. 별 걸림이 없는 데다가 따뜻하게 안고 갈 것도 있으니 불안하고 두려울 건 없지만, 고통을 줄여 도피안 하고 싶을 뿐이다.

  먼저 이비인후과로 갔다. 어지럼증 때문에 왔다 하고 차례를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설문지를 주면서 작성하라 한다. 언제부터 어떻게 일어난 증상이며. 현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십여 개 항목으로 물었다. 의사가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검사해 보자 한다.

  앞이 캄캄한 두꺼운 안경을 씌우더니, 눈을 크게 뜨고 보이는 점을 따라 눈동자를 굴려 보라 했다. 안경을 씌운 채 누우라 하더니 목에 힘을 빼라 하고 이리저리 돌렸다. 일어나 직선으로 걸어보라 했다. 잘 걷다가 돌아서는 순간 넘어질 듯 주춤했다.

  검사 결과 이석증에 의한 어지럼증은 아닌 것 같고 중추성 어지럼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석증보다 더 중증일 수 있고, 뇌졸중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했다. 신경과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뇌졸중으로 꼬박 한 해를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올 것이 오는가. 두렵다. 죽음이 아니라 병고가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신경외과로 갔다. 소견서를 보여주니 MRI 촬영을 해 보자 했다. 똑바로 누워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있으니 연속적인 기계음과 점점이 끊어진 음이 반복적으로 고막을 때린다. 자기장으로 고주파를 발생시켜 그 반응을 통해 인체의 필요한 부분을 영상화시키는 장치라 했다.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로 오니 영상화된 뇌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던 의사가 별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런 증상이 오느냐 하니 일시적인 충격이 원인일 수 있다며 뇌에 충격을 가하거나 머리 안마 같은 건 하지 말라 했다.

  ‘머리 안마~!’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내가 말하지도 않은 일을 의사가 짚어낸다. 어이가 없었다. 늙은 아비의 건강을 위해 안마 의자를 마련해 준 아들을 기특히 여기며 머리를 비롯한 전신 안마를 즐긴 것이 병통이 될 줄이야! 누구도 원망할 수도 없는 내 어리석은 소치다. 아들을 탓할 일은 더욱이 아니다.

  자동차가 그렇듯이, 문명의 이기라는 게 사람을 편하고 편리하게 하면서도 폐해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임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 폐해를 내가 이리 당할 줄을 미처 몰랐다. 그렇구나. 문명의 편의를 누리려 하기 전에 살펴 삼가기를 마다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다. 분별없이 따르는 문명의 종이 될 것이 아니라 문명의 슬기로운 주인이 되어야 할 일이다.

  병원을 나서는 걸음은 여전히 취한 듯 흔들거린다. 별 이상이 없다고 하니 곧 회복되겠지만, 내 걷는 걸음이 다시 돌아 보인다. 이기의 유혹 앞에서 나를 먼저 돌아보는 슬기가 나에게 있는가, 내 삶의 주인이 된 걸음으로 나를 걷고 있는가, 이 불의지병(不意之病)으로 다시 돌아본다. 피안은 스스로 가꾸어가야 할 일 아닌가.♣(20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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