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내가 남겨 놓은 것들

이청산 2023. 1. 28. 22:31

내가 남겨 놓은 것들

 

  어느 날 아침, 날이 밝아와 눈을 떠보니 내가 죽었다. 날마다 해거름이면 아늑히 오르는 산을 올라 숲을 걷고 나무를 보며 상념에 젖다가 내려왔다. 몸을 씻고 이따금 즐겨 마시는 막걸리 한잔하고 잠이 들었다. 그 길로 길고 깊은 잠이 든 것 같다.

  다양한 사회 경륜과 함께 장관도 지내고 테니스를 좋아했던 어떤 분은 어느 날 오전에 한 게임 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한 다음 와인 한잔하고 잠들었다가 그대로 영면했다 한다. 향년 88세였다 한다. 조용헌 명리학자는 그 죽음을 두고 거의 ‘신선급’ 죽음이라 했다.

  나는 이렇다 할 경륜도 없고, 그분만큼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딴은 산전수전 겪다가 물러나 산수 좋은 곳을 찾아와 살면서 이리 가니, 아쉬움은 별로 가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어찌하며 살다가 이리 떠나왔는가를 둘러보고 돌아보니, 안 남겨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남겨두고 온 것 같아 그게 걸린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무겁고 아린 짐을 준 것 같아 유체일망정 마음이 가볍지 않다.

  저 책들은 다 무엇인가. 내가 살아있을 적에는 읽으면서 지식과 정서를 얻게 해 주는 것으로 충분히 소용이 있는 것이었다. 서가에 꽂아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는 거라고 여기기도 한 것이지만, 이제 누가 나와 같은 그 소용과 의의를 가져줄 것인가.

  내가 글을 써온 사람이라고 따로 마련해 놓은 저 책장, 내가 낸 책이거나 내 글을 발표한 책들을 모아둔 것이다. 가끔 한 번씩 빼보며 내 삶의 자취를 되새김질해 보기도 하면서 마치 나의 작은 분신들처럼 여기지 않았던가. 그렇듯 보듬어 줄 사람이 있기나 할까.

  이제 내 몸도 곧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듯, 저것들도 재로 만들어 나와 함께 세상을 떠나 올 수 있도록 해 주고 올 걸 그랬구나. 내가 참 어리석었다. 저 책들과 더불어 오래도록 갈 줄만 알고 껴안고 있었구나. 부질없는 일인 것을.

  책들만 아니다. 내가 입고 쓰던 옷가지며 집물들이 좀 많은가. 하릴없다. 손도 발도 없는 내가 어찌할 수 있을 것인가. 미안하고 무렴하지만 남은 사람들에게 처리를 미룰 수밖에 없다. 쓰고 못 쓰고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재로 살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홀가분히 느껴지지 않는 건 무엇이 더 남아 있기 때문인가. 저것들이야 누가 치워줄 수도 있겠지만, 내 가슴속의 짐들은 누가 치워주고 씻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살았을 적의 일들을 돌아보면 쉬 잊히지 않을 무거운 짐들이 한둘이 아니다.

  태어나 살아오는 동안 부모님의 몸과 마음에 너무 많은 아픔과 짐을 지워 드렸다. 그 짐을 미처 덜어드리지 못해서 돌아가시어 고스란히 내 마음의 짐으로 옮겨 왔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그저 가슴만 아파하다가 그냥 나는 죽었다.

  부모님의 그 업과 덕으로 내 업이라는 걸 갖게 되었지만, 나는 모든 일에 덩둘했다. 잘한다고 하는 일이 해놓고 보면 시행착오투성이였다. 무슨 의기, 혈기였던지 함께하는 사람들과 다투기는 왜 했던가. 젊기 때문이었을까. 그 때문에 옳게 한 일도 빛이 바래기도 했던 걸 돌이키면 이 또한 살아서 벗지 못한 나의 짐이 아닐 수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남 가르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되었는지. 아는 게 별로 많지도 크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양하고 가르쳐 온 걸 생각하면 핏기 잃은 지금도 얼굴에 화기가 인다. 그러면서 그 귀한 인격들에게 꾸중은 왜 그리했던가.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내 생각만이 옳고, 내가 하는 일만이 지고한 것이라 여기며 모든 걸 나에게만 따라주기를 바랐다. 그저 내 뜻대로만 하려 했다. 진실로 미안하오. 못난이 때문에 얼마나 속을 많이 끓였소? 죽어 철이 든들 뭘 하겠소.

  아이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어떻게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었던가. 무얼 잘못했다고 꾸중만 하려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에겐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여기지는 않았던가. 내 꾸중 앞에서 절망감을 느꼈을 아이들아, 저승 사람이 되니 참 아프게 돌아 보이는구나.

  이렇듯 후회로 점철된 생애를 살다 간다. 어떤 글을 보니 후회에는 안정 욕구를 지닌 기반성 후회, 성장과 경험 욕구를 지닌 대담성 후회, 선함 욕구를 지닌 도덕성 후회, 사랑과 친절 욕구를 지닌 관계성 후회 등이 있다던데, 나에게는 주로 관계를 잘 맺지 못한 후회가 많이 남은 것 같다. 

  그래도 모두 고맙다. 그러함에도 임무를 마치고 물러나 산수 좋은 곳에서 죽을 수 있어 고맙고, 고행의 바라지 덕분에 잘 살아올 수 있어 고맙고, 아이들 잘 장성하여 제 노릇 잘해주어 고맙고, 하잘것없는 삶 속에서도 그윽이 기울일 수 술잔이 있어 고마웠다.

  후회의 짐들을 내려놓을 길 미처 찾지 못하고 고마움만 안고 물색없이 나는 간다.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간다. 윤회라는 게 있어 설령 다시 올 연이 있을지라도, 오고 싶지는 않다. 또 누구를 힘들고 아프게 할 것인가. 그래서 또 후회의 짐을 지고 떠나야 할 것인가.

  이제 내 영이 묻힐 산을 오른다. 익숙한 걸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어찌어찌하다 혹, 이승 연 다시 가지게 된다면 묵묵히 아늑한 그늘을 내리는 저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잎 다정히 푸른 나무가 되고 싶다. 그리 살고 싶다.

  이제라도 사랑으로 오로지하고 싶은 내 만났던 모든 이들이여, 잘 살다 가게 해 준 고마운 세상이여, 모두 잘 있으오. 송구하게 살다 가오.♣(202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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