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칡넝쿨이 밉다

이청산 2016. 9. 21. 20:52

 

칡넝쿨이 밉다

 

 

강둑 산책길을 걷는다. 길섶을 수놓고 있는 야생초며 야생화, 날마다 철마다 새 얼굴 새 모습이 기껍고도 신비롭다.

꽃마리, 냉이꽃, 제비꽃, 뻐꾹채가 아리땁던 철이 가고, 개망초 하얀 꽃이며 금계국 노란 꽃이 흐드러지는가 싶더니 연분홍 메꽃, 우윳빛 사위질빵 꽃이 덩굴을 늘이며 길섶 수풀을 꾸미고 있다.

지금은 자줏빛 달개비며 다홍빛 유홍초가 윤슬 반짝이는 강물을 배경으로 강둑을 장식하고 있고, 봄부터 피던 달맞이꽃, 애기똥풀 샛노란 꽃은 날을 지나고 철을 넘어 아직도 꽃잎을 함초롬 열고 있다.

이런 변이 있나! 밤새 달을 맞이하고 아침 솟는 해를 보며 한숨 돌리려 하는 달맞이꽃의 목을 칭칭 감으면서 목을 죄는 놈이 있다. 칡넝쿨이다.

줄기가 연하기나 한가, 잎이 조그맣기나 한가. 숲을 다 덮을 듯이 커다란 잎을 달고, 질기고도 굵은 넝쿨을 죽죽 뻗으면서 저보다 약하거나 강하거나 가림 없이 마구 감아 젖히고 있다.

버들, 비수리, 싸리 가지는 말할 것도 없고, 쑥대, 망초대, 억새, 심지어는 강아지풀대 같은 것도 닥치는 대로 감고 있다. 참 방자하다. 봄이면 화사한 꽃을 피워 온 강둑을 꽃 천지로 만드는 왕벚나무 가지도 거침없이 타고 오른다.

뿐만 아니다. 풀숲 길을 걷는데, 이놈의 넝쿨이 이리 뻗고 저리 얽히면서 예사로 길을 막고 발목 잡는다. 곱게 핀 풀꽃이며 푸르고 맑게 흐르는 강물에 눈길을 얹고 걷다가 보면 놈은 어느새 발길을 낚아챈다. 주춤 덜퍼덕 엎어질 뻔했다.

왜 그리 속이 끓을까. 별로 되새기고 싶지 않은 까마득한 옛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내가 세상 속을 살 때 무슨 짐을 하나 지고 있으면서, 힘이 좀 드는 대로 그 짐을 제대로 지다가 내려야 할 자리에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내가 사는 세상, 그 조그만 지역에 보잘것없는 권력을 가진 무리가 있었다. 그들 스스로는 대단한 힘을 가진 것으로 알고, 그 힘 들이댈 곳을 찾아 눈에 심지를 돋우곤 했다. 그 눈심지 닿는 곳이 있으면 저 칡넝쿨처럼 마구 감아 틀어쥐려고 핏줄을 세웠다.

이따금 숨 막히게 감겨왔다. 넘어가려는 숨을 질기게 붙드는 일도 내가 지고가야 할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 지고 있던 짐을 마침내 제자리에 내려놓기에 이르렀다. 또 세월이 흘러 한 세상을 마감하고 새로운 생애를 살고 있는 지금, 저 소증사나운 칡넝쿨이 껄끄러웠던 지난 일을 게우게 하고 있다.

발길을 채는 넝쿨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다. 넝쿨을 걷어 당겨도 잘 끊어지지가 않는다. 줄기가 뻗어나고 있는 마디를 짚어 꺾으니 뚝 끊어진다. 길을 막는 줄기를 잡고 마디를 사정없이 부러뜨려 길을 틔웠다.

저 연약한 풀대를 타고 오르는 놈도 지나칠 수 없다. 우선 감고 있는 걸 곱게 풀어서 마디를 뚝 꺾었다. 온몸이며 목줄까지 감겨 있던 것이 풀어지자 풀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곧추세운다.

봄이면 강둑을 온통 꽃 세상으로 만들고, 이윽고 곱게 단풍이 들 저 벚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것은 어떻게 할까. 나무를 한참 타고 오른 넝쿨은 줄기며 마디조차도 굵고도 질겨 손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다음날 아침 산책길에 나뭇가지 자르는 가위를 가지고 나섰다. 유홍초며 달개비꽃 곱게 핀 숲길을 지나 칡넝쿨 우거진 곳에 이르러 넝쿨을 헤치고 나무 밑에 섰다. 넝쿨 밑동을 삭둑삭둑 잘랐다. 어떤 줄기는 엄지손가락 굵기만 했다.

자르다가 보니 홍자색의 꽃이 보이기도 했다. 이들도 번식을 마다 않아야 할 생명체라 물색도 고운 꽃을 피운다 생각하니 측은하기도 했지만, 이웃을 마구 감치는 행태는 용서할 수 없다 싶어 가차 없이 밑동들을 잘라버렸다.

이튿날 산책길을 걸으며 보니 나무를 타고 오르던 넝쿨이며 잎들은 다 시들었다. 세상을 살면서 남을 위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본 일이 없는 내가 조금은 괜찮은 일을 했다는 은근한 마음으로 풀숲을 더듬노라니, 쾌재! 희한한 광경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잎도 없는 노란 넝쿨이 철망을 치듯 얼기설기 얽히고 뻗으며 칡넝쿨을 꼼짝 못하게 싸안아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메꽃과의 한해살이 기생 식물인 새삼이라는 넝쿨이었다. 저 천지를 모르고 깨춤을 추는 칡넝쿨에도 천적이 있구나.

새삼이란 어떤 식물인가를 검색하는 중에 어느 큰 신문의 이름 날리던 주필이 권력을 자행하다가 세상의 뭇매를 맞고 신문사를 쫓기듯 나와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는 기사가 보였다. 그도 칡넝쿨 같았던가 보다.

그런데 그 밉살스럽기 짝이 없는 칡넝쿨을 여지없이 처단하고도 마음이 그리 상쾌하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자른 줄기의 잎사귀 뒤에 피어있던 붉은 꽃이며, 새삼에 온몸을 옥죄이고 있던 넝쿨 모습이 설핏 스쳐간다.

저들을 미워하는 내 마음을 저들이 알기나 할까. 나만 그 암 덩어리 같은 감정의 찌꺼기를 안고 끙끙거릴 뿐이지 않은가. 그것이 어찌 나를 편하게 할까.

조용필의 노래(, 양인자 작사)처럼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라고 할 것까지는 없을지언정, 내 마음의 고요를 위해서라도 미움덩어리는 들어내야 할 것 같다.

용서하고 사랑하지는 못할지라도, 내일 아침 산책길에서는 미운 마음은 제쳐두고 저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애써 보리라. 시든 잎을 가엽게 여기면서-.(2016.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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