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어머니의 교자상

이청산 2016. 7. 8. 14:37

어머니의 교자상

 

어머니는 늘 작은아들에게 물려준 세간붙이가 없는 걸 안타까워했다.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는 큰아들에게 살림살이와 가사 운영의 책임을 물려주시고는 뒷전으로 나앉으셨다. 작은아들은 큰아들의 그늘로 학교를 마치고 직장으로 나갔다. 제 힘으로 밑천을 모아 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렸다.

살림 날 때, 어머니가 줄 건 이것 하나뿐이라며 놋그릇 한 벌을 주었지만, 무얼 물려주고 받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작은아들은 다른 이의 힘을 빌지 않고 가정을 이루어 꾸려 나갈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부듯했다. 부모님들도 대견하게 여기면서도, 어머니는 번듯한 세간 하나 쥐어주지 못한 걸 마음 아파하며. 용전이라도 생기면 모아 두었다가 작은아들네에 그릇 벌이라도 챙겨주려고 애를 태우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제수를 차릴 큰 상이 필요해졌다. 그런대로 괜찮게 사는 큰아들은 여러 가지 제기와 함께 교자상을 장만했다. 큰 상은 제사를 지낼 때도 요긴했지만 모처럼 자식들이며 친척들이 모여 앉을 때도 편하게 쓰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집으로 큰 상이 하나 갈 것이니 받아 놓으라고 전화를 했다. 웬 상이냐고 했더니, ‘너희들도 살림 이력이 점점 늘어나는데 왜 필요할 일이 없겠느냐.’고 했다. 우리 힘으로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해도 무가내셨다.

며칠 후에 상이 배달되어 왔다. 짙은 고동색 맑은 옻칠에 얼굴이 비치는 제법 큰 교자상이었다. 큰아들네에 있는 교자상을 보고 어떻게 하든 작은아들네에도 하나 들여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 걸 위하여 이따금씩 드리는 얼마간의 용전도 쉽사리 쓰지 못하고 주머니에 꼬깃꼬깃 모으기를 애쓰셨을 걸 생각하니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그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상만 남았다. 상을 들여다보면 어머니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응석둥이로 키운 작은아들에 대한 애틋함이 서려있는 모습이다.

어머니가 보시진 못했지만, 그 상으로 작은아들네 손주들 혼사도 치르고, 아들이 그 아이들로부터 생일상도 받는 세월이 흘러갔다. 작은아들은 집을 두고 객지를 전전하는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큰상 차릴 일이 별로 없어 장롱 위에 고이 모셔 두는 날이 많았다.

어머니 가시고 십수 년 세월이 흐른 후에 작은아들은 한 생애를 마감하고 세속의 일을 털게 되었다. 객지로 떠돌 일도, 집을 나설 일도 별반 없는 날들이 안겨 왔다.

산 푸르고 물 맑은 곳을 찾아 앉았다. 이제 사는 듯이 살아보자며 마당엔 남새밭도 만들고, 집 안엔 마루도 놓아 어머니의 교자상을 내다 놓았다.

누가 와도 그 상을 가운데로 하고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어느 때는 그 상이 받쳐주는 술잔으로 사람살이의 깊은 정들을 새기기도 했다. 그 때 상 위에 어른거리는 어머니 얼굴에는 해사한 미소가 번져나는 듯했다. 한 생애를 무탈하게 잘 마쳐준 걱정둥이 아들을 흐뭇해하시는 듯도 했다.

아이들 식구들이 다녀간 어느 날 상을 보니 이 게 무슨 괴변인가. 상의 한 자리가 까맣게 타고, 탄 자리는 금이 져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참사가 있나, 뜨거운 것을 단열 받침도 없이 상 위에 그대로 놓았다니! 이 상 위에서 어머니 얼굴을 어떻게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왜 이런 조심성도 없느냐며 아내를 힐난하니, 아이들이 뭘 몰라 그렇게 한 것 같다면서, 쓰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대수롭잖게 대꾸한다. 정녕 아내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까. 아들과 며느리의 마음이 이토록 다르단 말인가. 고부간이란 그런 것인가.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긴 하지만, 아내에게 서운한 마음이 겹쳐 상의 상처를 보는 마음이 더욱 아렸다. 아내는 상을 천년만년 그대로 쓸 수 있을 줄 알았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 상에 갖은 그릇들을 올린다. 그 후에도 상에는 몇 군데 조그마한 흠이 져갔다.

그 상을 아끼는 내 마음이 아내의 시샘을 부를지도 모를 일이라 싶어 천연한 척도 했지만, 상처 난 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다지 편할 수가 없다. 그것 하나 마련해 주고 싶어 고심했을 어머니의 애잔한 마음에 아린 생채기를 지운 것 같아 못내 쓰렸다. 이래저래 나는 평생을 두고 어머니의 어쭙잖은 걱정둥이 아들이다.

세상에 변해가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아내의 말마따나 그 상도 언제까지나 그 모양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상을 마련해 주신 어머니도 저 세상으로 가신 지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나도 이제 어머니가 상을 마련해 주실 때쯤의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어머니의 저 교자상도 나에게로 와서 한 세대가 훌쩍 넘는 세월의 더께가 앉아있지만, 내 살아생전에는 저 상과 오롯이 함께하고 싶다. 상 위에 어른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듬다가 때가 되면 어머니의 세상으로 가고 싶다. 아내가 이 심사를 알기나 할까.

아내는 상 위의 그릇들을 어지럽게 둔 채 마당으로 나가, 아이들에게 보내야겠다며 텃밭 남새들을 뜯어 다듬고 있다.(20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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