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송강의 연인을 기리다

이청산 2016. 6. 24. 18:02

송강의 연인을 기리다

 

경기도 고양의 송강마을에 가면 의기(義妓) 강아(江娥)의 묘가 있다. 송강마을은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의 부모 묘가 있는 곳이고, 송강이 시묘를 살던 곳이다. 송강도 죽어 부모 곁에 묻혔다가 나중에 진천으로 옮겼다.

강아는 송강이 생전에 사랑했던 기생이다. 강아의 묘비는 1998년에 이은만 송강문학관장이 주도하여 세웠는데, 비문에 송강과 강아와의 절절한 인연을 적고 있다.

송강이 전라도 관찰사로 재임할 때 남원의 동기(童妓)인 자미(紫薇)를 지극히 사랑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송강의 ()’자를 따서 강아(江娥)’라 불렀다고 한다. 정철이 도승지로 임명되어 떠나면서 영자미화(詠紫薇花)’라는 시를 지어 석별의 안타까운 정을 새겼다.

그 후 강아는 송강에 대한 연모의 정이 깊어 송강이 함경도 강계(江界)로 귀양 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송강을 전라·충청도 지방의 도체찰사로 부르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 강아는 다시 송강을 만나기 위해 혈혈단신 적진을 뚫고 남하하다가 적병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의병장 이량(李亮)의 권유로 자기 몸을 조국의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적장 고니시(小西行長)를 유혹하여 첩보를 얻는다. 그 첩보를 아군에게 제공하여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평양 탈환에 큰 공을 세운다. 적장에게 몸을 더럽힌 강아는 소심(素心)이란 이름으로 입산수도하다가 송강의 사후 고양 신원의 묘소를 찾아와 한 평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로써 보면, 강아는 우여곡절 속에도 오직 송강을 바라며 평생을 바쳤다고 할 수 있는데, 전설과도 같은 강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어떻게 전해진 것일까. 사실을 추적할 길이 없어 묘비를 세운 이 관장에게 문의했더니,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의 소설 자고 가는 저 구름아에도 나오고, 송강 집안의 파보(派譜)연일정씨소은공파소종세보(迎日鄭氏簫隱公派小宗世譜)’에도 기록되어 있다며, 파보를 사진으로 보내 주었다. 이 관장이 세운 비문의 내용과 같고, 월탄의 소설 속 이야기와도 대동소이한 내용이었다.

송강과 기녀에 관련된 것으로 문헌에 나오는 것은 강계 유배 시절에 인연을 맺은 진옥(眞玉)과의 이야기가 있는데, 널리 회자된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코나/ 내게도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라는 시조를 송강과 화답으로 주고받은 그 진옥이다. 이 시조들은 편자 미상의 시조집 근화악부(權花樂府)’에 실려 송강이 진옥과 더불어 수답하며 지었다.[鄭松江與眞玉相酬答]’는 짧은 주()가 달려있다. 진옥과 함께 한 송강의 이야기는 박을수(朴乙洙) 님이 편찬한 시조시화(時調詩話)’에 소설 같은 사연으로 엮어 실어놓았다.

두 사람은 영육 간의 깊은 사랑을 함께 했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가 정철을 다시 서울로 부르는 바람에 진옥과 헤어져야 했다. 송강이 적소에서 풀려나는 기쁨도 잠시, 진옥은 석별의 아픔을 가누기가 어려워 그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

오늘밤도 이별하는 사람 하 많겠지요. /슬프다! 밝은 달빛만 물 위에 지네./ 애닯다! 이 밤을 그대는 어디서 자오./ 나그네 창가엔 외로운 기러기 울음뿐이네.”

송강의 부인 안 씨는 진옥을 한양에 데려올 것을 남편에게 권했지만, 진옥은 끝내 사양하고 강계에서 혼자 살면서 송강과의 짧은 사랑을 안고 외로운 나날을 보냈다.

이러한 진옥의 이야기를 보고 진옥이 곧 강아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고,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 같지만, 문헌상으로 상고할 길은 없다.

시조 문헌에 소략하게 보이는 진옥과는 달리 송강에 대한 강아의 사랑 이야기는 송강의 문중 족보에도 오를 만큼 오래된 사실로 전해왔던 것 같다. 월탄도 이 문중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근거하여 소설을 썼던 것으로 보이며, 이 관장을 비롯한 고양 그리고 송강마을 사람들은 족보 속의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여 고양시장도 함께 참여한 비석까지 세워 강아를 추모하고 있다. 송강의 연인을 기린 것이다.

이는 송강을 향한 오직 한마음 강아의 애틋한 사랑을 기리려 한 것이지만, 대문호 송강을 우러르는 마음이 강아를 더욱 송강의 아름다운 연인으로 기려지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송강의 연인 강아를 기리는 마음이 곧 송강을 우러르는 마음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송강이 새원 원주 되어 시비를 고쳐 닫고/ 유수청산을 벗 삼아 던졌노라/ 아희야 벽제의 손이라커든 날 나가다 하고려라 노래했던, 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에는 지금도 송강고개, 송강보, 송강낙시터가 남아 송강의 그림자를 온전히 새겨주고 있다.

수십 년을 두고 송강을 받드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쳐온 이은만 송강문학관장은 이 송강마을에서 그의 문학적 위업을 드높이는 일에 남은 생애도 걸 것이라 한다. 송강의 위업이 영원히 받들어지는 한 송강을 향해 삶을 불살랐던 강아의 뜨거운 사랑도 영원히 기려질 것이다.

송강의 연인 기리며, 그 연인이 즐겨 불렀을지도 모를 송강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다시 뇌어본다.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찰하리 싀어디여 범나비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데 죡죡 안니다가, 향 므든 날애로 님의 오새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라셔도 내 님 조차려 하노라.”(2016.6.15.)

                                                                       

 


낭독으로 듣는「송강의 연인을 기리다(낭독 정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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