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고향 가 살다 죽으리

이청산 2016. 5. 29. 14:40

고향 가 살다 죽으리

 

올여름의 낭송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는 김 선생이 나에게 노천명의 망향(望鄕)’이라는 시를 낭송해 달라고 했다. 콘서트를 몇 장으로 나누어 장마다 조금씩 다른 테마로 전개해 볼 계획이라 했다.

노천명노천명(盧天命, 1912~1957) 하면 사슴이나 푸른 오월이 유명하지만, ‘망향은 별로 접해 보지 않은 시여서 우선 시집을 찾아 그 시와 친하고 싶었다. 낭송을 하자면 외야 하지만, 외기 전에 먼저 시의 분위기에 젖어들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가리라/ 마지막엔 돌아가리라/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로 시작하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라고 하소연하는 이 시는,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타향살이 속에서 고향에 시집 '창변'에서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노래한 시였다.

시 속에는 접중화, 싱아, 뻐꾹채, 장구채 등 봄이면 소녀들이 뜯던 많은 나물 이름들이 나와 향토색을 더해주는데, 그 소녀들이 말끝마다 소리를 찾고라는 대목은 무슨 뜻인지 의아스러웠다.

검색을 거듭해 보아도 시원히 풀어 놓은 곳이 없어, 현대시를 전공하는 어느 대학 교수님께 자문을 구했다. 학문적으로 풀이가 되어 있는 건 없지만, 시인의 고향인 황해도 사투리의 의문형 어말어미 ‘-를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역시 짙은 향수를 그려내려는 소재인 것 같았다.

장구채사실 노천명은 고향인 시골보다는 서울에서 많이 살았다. 8세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모친의 고향인 서울로 이주하여 성장하면서 보통학교, 여고보, 여전을 다니고 졸업 후에는 신문기자로 활동하였다.

그가 스스로 시골 두메 촌에서 어머니를 따라 달구지를 타고 이삿짐을 실리고 서울에 올라오던 그때부터 나는 이미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것이다.”(수필 산나물’)라고 고백한 것처럼 서울은 결코 이상향이 되지 못하고, 줄곧 향토적인 전원 세계와 고향으로의 회귀를 갈구했다.

노천명 시의 연구자들은, 그토록 고향을 그리워한 것은 천성적인 향토주의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서울 생활을 통해 많은 상처를 받은 결과로 보고 있다. 죄악시한 그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시집 '창변'에서

노천명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를 잘 써서 학생들 앞에서 낭독도 곧잘 했지만, 성격은 예민하여 신경을 건드리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곤 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러한 성격이 그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뤄놓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찌하였건 노천명의 향수는 가문 날 마른하늘을 바라는 농군의 심정 같거나, 구금된 수인이 푸른 하늘을 그리는 마음 같을 거라 짐작해 보며 시를 한 구절 한 구절 외기 시작했다.

마지막 연에서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 속에/ 찔레 순 꺾다 나면 꿈이었다,”로 끝맺기엔 좀 허전한 것 같아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를 덧붙여 고향 그리는 마음을 좀 더 간곡하게 낭송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를 외어 가면서 노천명의 향수에 젖는 사이에 시나브로 나의 향수가 돌아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고향이 있는가, 고향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있는가. 이 시를 외면서 마음 한 곳이 아릿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도 노천명이 고향을 떠날 무렵의 나이에 곤궁한 삶을 벗어나보려는 부모님을 따라 도시로 나왔다. 간난을 헤쳐 가며 학교를 다녔다. 물론 나보다는 부모님이 더 곤고했다. 그렇게 사는 사이에 고향을 그리워할 겨를도 별로 갖지 못했고, 고향의 아린 기억들은 조금씩 잊혀갔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갔지만, 나의 사회는 몇 년마다 한 번씩 삶의 터를 옮겨 다녀야 하는 곳이었다. 정들 만하면 떠나야 하기도 했고, 정 들이기가 어려워서 떠나야 하기도 했다. 온화한 햇살 같고 청량한 샘물 같은 정을 느꺼워 하며 살기도 했지만, 분주와 번다 속에서 어지러운 몸과 마음을 앓기도 하고, 다툼과 시새움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런 세월 속에 한 생애가 유유히 흘러갔다.

무언가 아련히 그리워졌다. 한 생애의 끝자락이 다가올수록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져 갔다. 다음 세상은, 차후의 생애는 바쁠 일도 어지러울 일도 없고, 서로 시새워 다툴 일도 없는, 소곳이 따사롭기만 한 곳이 어디 없을까. 그렇게 모든 것을 비우고 숲정이 바람소리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곳에 대한 동경이 쌓여갔다. 유치환의 노스탤지어(nostalgia) 같은 거라고 할까. 동경만 쟁여가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두 발을 내릴 수 있는 곳을 그렸다.

배우가 연극의 한 막을 끝내 듯 한 생애를 마감했다. 그리고 새로운 한 막의 생애를 찾아 훌쩍 떠나왔다. 어지러운 모든 것은 다 두고 왔다. 바람소리 새소리 살갑게 감겨오는 숲속을 들고, 강물 윤슬 따라 풀꽃 어여쁜 강둑을 걸으면 되는 곳을 찾아왔다. 고향이 되었다. 고향으로 왔다. 노천명이 돌아가고자 했던, 그러나 꿈일 뿐이었던 그 고향을 나는 찾아왔다.

노천명의 시를 다시 왼다.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메밀꽃이 하이얗게 피는 곳/ 조밥과 수수엿이 맛있는 고을

그 고향을 살고 있다. 노천명의 시를 욀 올여름의 콘서트를 바라며, 돌아가 살다 죽으리라던 천명의 고향을 나는 지금 살고 있다. 천명의 고향을 그려낼 무대를 그리며 내 살다 죽을 동리를 살고 있다.(2016.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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