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흐르는 물처럼

이청산 2016. 2. 12. 11:39

흐르는 물처럼

 

고샅을 나서 논두렁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 차부로 간다. 터미널에 이르러 대처로 가는 차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 두 시간 가까이를 달려 조명등 찬란한 거리 어느 곳에 이르러 친구들을 만난다. 그동안 탈 없이 잘 있었느냐며 반가운 악수를 나누고, 산촌을 사는 즐거움은 어떻고, 도회를 사는 재미는 또 어떠냐며 세상살이 담론들을 피워낸다.

세상 번잡한 것을 다 떠나 바람 소리 새소리를 뒷소리로 앉혀두고 물 보고 산에 안기며 살겠다고 한촌을 찾아온 지도 어언 대여섯 해가 흘렀다. 아침마다 윤슬 반짝이는 맑은 물을 옆구리에 끼고 강둑을 걸으며 하루를 열고, 해거름이면 숲정이 포근한 산길을 올라 숲 사이로 번지는 담홍 다홍 고운 노을로 하루의 한 매듭을 짓는다.

물빛 맑은 아침 강둑길을 걷고, 아늑한 해거름 산에 안기다 보면 몸도 마음도 그리 삽상할 수가 없다. 어찌 마음에 울증이 있고 몸에 병통이 있을 것인가.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어디에 또 있을까. 아무 것에도 걸릴 것 없는 무위의 심신 운동이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 되어 사는 삶이 고요하고도 편안하다. 편안하고도 즐겁다.

자연 살이도 좋지만, 사람으로 숨 쉬고 살면서 어찌 울고 웃는 사람의 일들을 모른 체 할 수 있으랴. 풀같이 정겹고 나무같이 꿋꿋하게 사는 한촌 사람들과 어울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맞겯는 것도 또 하나의 정겨운 자연 살이다. 어쩌다 한 번씩 안겨오는 세상 풍경을 보듬으며 차를 달려 나가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푸는 일도 즐겁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만날 친구가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생기롭고도 고마운 일인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얼굴을 마주한다. 온갖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로 고담준론들을 토로하다보면, 저마다 품고들 있는 지긋한 세월 탓인지 화제는 어느새 건강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같은 시기에 퇴직한 어떤 이가 어느 날 갑자기 드러눕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이내 저승 나그네가 되었다는 서글픈 소식을 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구는 허리 무릎이 시원찮아 움직이기에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하고, 누구는 혈관계에 이상이 생겨 조섭에 애를 쓰고 있다는 둥 갖가지 편치 않은 심신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그런 이야기 끝에는 반드시 무슨 약이며 요법이며 저마다의 비법이 쏟아지는데, 한 친구가 문득 세상사 모든 것이 시들해지면서 자신감도 없어지고 시시로 울적한 심사에 젖는다며 넋두리를 푼다. 이 게 요즈음 노인층에서 많이 겪고 있다는 우울증이라는 건가.

어느 날 신문을 보니,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에 3명 정도가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며, 주된 까닭은 질병, 외로움, 소외감 같은 것이라고 한다. 노화로 인해 신체기능이 떨어져 여러 가지 질병을 얻게 되면, 스스로 '쓸모없다'는 생각에 젖어 우울증에 빠지기가 쉽다는 것이다. 혹 믿고 살던 짝이라도 잃는 날이면 상실감과 소외감이 더욱 커져 심한 우울감에 빠져 자진의 길로 드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럴 때는 말벗만 있어도 많이 나아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기관에서 나서서 '독거노인 친구 만들기' 사업 같은 일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다행스럽다 할까, 외람스럽다 할까? 나는 아직 차탈 때 자리 양보를 못 받아 서운해 본 적도 없고, 참기 어려울 만한 신병 같은 것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살면서 외로움이야 어찌 없을까만, 그리움은 일지언정 못 견디게 사무치는 고독감 같은 것과는 그리 친치 않다. 간혹 술 한 잔 하자며 날 부르거나, 내가 만나러 갈 수 있는 친구가 많지 않지만 없지는 않아 큰 소외감도 나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만하면 행복하다 할까, 물색없이 산다 할까.

하기야 사는 일이 어찌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여태껏 살아오면서도 넘지 못한 일들에 애를 태울 때가 없지 않다. 소소한 가정사에 속을 끓여야 하고, 세상과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가는 일에 마음 갈려 해야 할 일도 적잖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노라면 아름답고 그리운 일들도 없지 않지만,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 때는 왜 그리 어둔하게 살았던가. 이런 모든 상념들이 꿈 깬 아침 잠자리를 외롭고 울적하게 할 때가 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솔숲을 지나는 바람처럼, 푸른 하늘을 떠가는 하얀 구름처럼 살고 싶지만, 세상사 마음같이 뜻같이 쉬 이루어질 일이던가. 문득 무문관(無門關)’ 참선 수행을 이끄는 어느 수련원 스님의 일갈이 쩌렁하게 울려온다.

"수류(水流). 강에 흐르는 물이 지나쳐온 꽃밭을 아쉬워합니까. 예쁜 노루와 나눴던 입맞춤을 그리워합니까. 아니면 나중에 웅덩이에 맴돌까봐 걱정합니까. 물은 새로운 것을 만나며 그저 흐를 뿐입니다. 생생하게 흐릅니다."*

그렇구나. 애태웠던 일인들, 덩둘했던 일인들 지난 일에 어찌 마음을 잡아두고만 있을 것이며, 오지도 않은 내일의 희로애락을 두고 어찌 마음 졸여 할 것인가. 물 흐르듯 흘러가면 될 일이겠다. 이제 몸에 마음에 무엇이 걸릴 일이 있고, 무엇을 걸려고 할 것인가. 새로운 것을 만나면서 생생하게 흘러가면 될 일이겠다.

오늘도 아롱아롱 윤슬을 안고 흘러가는 해맑은 물을 보며 아침 강둑을 걷는다. 솔바람을 길 삼아 숲 사이를 젖어드는 고운 놀빛을 안으며 해거름 산을 오른다. 간혹 한 번씩은 행운유수 되어 그리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나가도 보고-.

무심으로 흐르는 물처럼, 걸림 없이 흐르는 세월처럼 흘러가고 싶다.(2016.2.9.)

 

*홍천수련원, 금강스님, 조선일보. 20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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