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일기

마을 숲 여름 잔치

이청산 2014. 7. 31. 10:37

마을 숲 여름 잔치
-청우헌일기·34

 

정현리 마을 주민 여러분께 알리겠습니다. 오늘은 마을 여름 잔칫날입니다. 지금부터 마을 숲 풀 깎기를 하고 아침 식사부터 하겠습니다. 모두 마을 숲으로……

이른 아침 이장의 목소리가 동네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어느새 마을 숲에선 사람들의 부산한 발걸음과 함께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들이 요란했다.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들은 선두에 서서 풀을 깎고 있는 이장이며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이장은 며칠 전부터 마을 사람들과 뜻을 모으기에 부산했다. 날은 좀 덥지만 농사일도 조용해지고 했으니 하루 날 잡아 여름 잔치를 한 번 하자는 것이다. 대처 사람들은 무슨 휴가를 떠난다고 법석이라는데, 그늘 좋은 마을 숲에서 조촐한 잔치라도 벌여 그간의 농사일 피로도 풀면서 복더위를 이겨보자 했다. 돼지 한 마리 잡고 채소와 찬거리를 좀 추렴하면 좋은 잔치가 될 거라고들 했다.

7월의 마지막 일요일로 날을 잡았다. 휴가철이라 마을 숲을 찾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 아침 일찍 모여 먼저 풀 깎기를 같이 하고, 숲에서 아침부터 함께 먹으면서 하루를 즐기기로 했다. 때마침 어느 방송국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촬영하러 온다고 했다.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고 정답게 사는 마을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될 것 같아 다행이라 했다.

전날부터 이장은 바빴다. 집집이 돌아다니며 내일 작업과 잔치를 위해서 누구는 무슨 기구를, 무슨 음식을 준비하고, 누구는 무슨 일을 어찌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몇 사람과 함께 어딜 가서 큼지막한 돼지를 한 마리 잡아 왔다.

서로 힘과 마음을 모아 내일의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들이 방송국의 카메라에 담겨 들어갔다. 방송국 사람들은 때맞추어 호재를 만났다고 좋아했다. 내일 먹을 고기를 조금 구우면서 몇이 둘러앉아 내일 해야 할 일들을 화기롭게 의논하는 장면들도 카메라는 놓치지 않았다.

날이 밝아온 마을 숲은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어 나갔다. 예초기를 돌리는 사람, 베어진 풀을 쓸어내는 사람, 고기 구울 기구며 상 차릴 집기를 나르는 사람, 그늘 아래 널따란 자리를 펴서 앉을 곳을 닦는 사람들로 저마다 일손이 분주했다.

몇 개의 상이 놓이고, 불판에서는 이글이글 불이 피어올랐다. 상을 차리기에 분주한 여인네들 틈에서 예쁘게 치장한 방송국 리포터도 일손을 거들며 함께 어울렸다.

풀 깎기를 마친 사람들이 모두 한 자리에 앉았다. 햇살이 퍼지면서 그늘이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소나무며 느티나무, 팽나무 노거수들이 우거져 있어 여름이면 그늘이 시원한 마을 숲에 종종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놀이판을 벌이곤 했다.

우리가 마실에서 이래 하기가 얼매 마이고? 살다보이 이래 좋은 일도 있네!”

가끔씩 어딜 나가서 자리를 마련하여 화합을 다지기는 했지만, 마을 숲에서 잔치판을 벌이기는 참 오랜만이라며 모두들 감격했다. 철철 때맞추어 해야 하는 농사 일이 바쁜 탓이라 하면서도, 마음의 겨를을 얻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모두들 마을 숲 잔치 생각을 내어준 이장에게 고마운 눈길을 모았다.

이장, 참 애 많이 썼소. 이렇게 하니 얼마나 좋아! 기왕 내친 김에 매년 날을 정해 놓고 이렇게 하면 어떨까?”

진작 이래 하고 싶었는데, 늦어서 미안합니다. 다 좋으면 매년 하기로 하지요!”

좋지, 좋아!” 모두들 한 마음 한 목소리다.

권커니 잣커니 술잔이 돌면서 왁자지껄 넘쳐나는 웃음소리를 따라 흥도 넘쳐났다.

이 좋은 날 술만 마시고 있을 거요? 뭐라도 한 판 놀아야지!”

뭘 할까 설왕설래하다가 남녀로 편을 갈라 상자 안에 신발 차 넣기를 하기로 했다. 남녀 줄을 갈라서서 앞에 둔 사과 상자에 신발 한 짝을 차 넣는데, 욕심대로 잘 들어가 주지 않는다. 어쩌다 하나 들어가면 마치 지난 대보름날 윷놀이판 같은 환호 소리와 춤판이 흐드러졌다.

흥이 점점 도도해져 가면서 놀이 재간이 좋은 옥자 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손을 잡고 둘러서게 하더니 노래를 부르며 빙빙 돌란다. “산토끼 토끼야~” 두 손을 머리에 얹고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빙빙 도는데, 갑자기 휘익!’ 소리와 함께 두 손가락을 펴들고 남녀 두울!”하고 외친다. 돌던 사람들은 재빨리 남녀 쌍을 맞추어 껴안는데 조 씨 혼자만 짝을 못 짓고 멋쩍게 웃으며 서있다. 모두들 박장대소-.

송아지도 부르고, ‘학교 종도 소리치며 한참을 그렇게 노는 사이에 해가 중천을 올라서고 있었다. 흥을 누르지 못한 사람들은 농구 골대에 공 던져넣기 놀이도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한다. 모두 아이들 같다. 나이 지긋한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다. 마을 숲은 그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가 되었다.

언제 해가 이렇게 기울었나! 오늘 참 잘 놀았네! 고기며 술이며 남은 것들을 수습하여 이른 저녁을 먹고 술 몇 잔을 더 나누면서 내년 7월을 기약한다. 박수를 치며 마을 숲 여름 잔치를 파한다. 햇살이 뜨거운 만큼이나 그늘은 시원했고, 두터운 그늘만큼이나 흥도 정도 만발했던 잔치의 즐거운 여운을 안고 모두들 일어선다.

이 모습들이 다 잡혔다. 잔치를 준비하던 모습이며 잔치를 벌이던 모습들이, 그렇게 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들이 카메라에 다 잡혔다. 카메라는 마을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보았을까. 카메란들 그 정에 그 흥을 정겨워하지 않았으랴.

마을 숲 여름 잔치의 흥이며 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짙푸른 들판에서는 쑤욱쑥 나락 패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201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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