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임금숙 시인을 추모하며

이청산 2013. 6. 14. 06:56

임금숙 시인을 추모하며

 

몇 년 전에 임금숙 시인이 나에게 준 다육은 아직도 파란 손을 귀엽게 내밀고 있는데, 그는 오십여 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우리들 곁을 떠났다.

병고로 오래 고생하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남겨놓고 그렇게 훌쩍 떠날 줄은 몰랐다.

내가 임 시인을 만난 것은 20016월 선주문학회에서였다. 그 때 그는 신입 회원으로 가입했지만, 한국문협 구미지부에서는 박태환 지부장과 손을 맞추어 사무국장 일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동안 객지를 떠돌다가 2003년에 고향을 찾아와 선산중학교에 근무하게 되어 구미문협에 가입하면서 다시 임 시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 임 시인은 사무국장을 물러나 감사를 맡고 있었다.

그 두 곳의 모임에서 가끔 만날 수 있게 된 임 시인은, 언제 보아도 밝고 환한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때로는 익살스러운 이야기로 좌중을 잘 웃기기도 했다.

그는 성격도 활달하여 자동차 사업을 하는 남편을 도와 함께 일도 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 활동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일을 척척 해결해낸 일들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느 해 라이온스클럽에서 주최한 체육대회 프로그램 중의 노래자랑에 참가하여 1등상을 받기도 했는데, ‘꽃타령을 부르면서 노래로 뿐만 아니라 춤으로도 분위기를 압도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활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어린아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맑고 밝은 정서의 세계를 노래하는 시를 많이 썼다. 나는 시적인 장치야 어떻든 해맑은 그의 시 세계가 좋았다.

어느 날 문협의 합평회에서 그의 맑은 서정 세계에 찬사를 보냈더니, 그는 아주 기뻐하며 노래방을 쏘겠다고 했다. 그 날 밤 금오산의 어느 노래방에서 목청 돋우어 노래 부르며 즐겁게 놀았는데, 지금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리운 추억이 되고 말았다.

1960년 전남 완도에서 출생한 임 시인은 1991년 월간문예사조에 동시로 신인상을 받고 등단하여 두 권의 동시집 엄마 꿈 나의 꿈, 꿈꾸는 섬을 내고, 2005년에는 시집 섬 사랑 도시 사랑을 내었다.

시집을 내던 그 해 415일 구미 구평동에 있는 교통연수원 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문협과 문학회 회원을 비롯한 많은 축하객들이 참석하였다. 나에게 건배 제의를 하라기에, 지금까지 임 시인이 세 권의 시집을 내면서 그 제목이 끝말잇기를 하듯 이어지고 있는데, 다음 시집을 낼 때는 마지막 시집 제목의 끝말을 따서 사랑해 당신을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고, 문운이 더욱 창성해질 것을 기원하는 건배를 하며 모두 함께 웃음으로 박수를 쳤다.

실제로 임 시인은 부부간의 금슬도 아주 좋은 것 같았다. 부군은 사업을 하는 틈틈이 시인 부인의 글 바라지에도 애를 쓰면서 출판기념회도 부군이 주선하여 열어주었다고 한다.

임 시인은 이런 부군을 두고 당신이 생명의 바다 붉은 태양이 되어 오르면/ 나는 십이월 막달 예쁜 신부가 되겠습니다.//세상이 힘들다하여도 당신의 사랑으로/ 감미로운 숨을 쉬고 싶습니다.”(나의 사랑 나의 운명)라며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노래하기도 했다.

활달한 성품의 임 시인도 갱년기를 앓는 여린 여인이요, 자식들에게는 다정다감한 어머니였다. 두 딸을 둔 임 시인은 갱년기 우울증을 겪으며 답답해하다가도 학교 간 딸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모든 걸 잊고, 딸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기에 몰두를 한다.(자식은 누가 힘이라 말했지에서)

그 무렵 그는 나의 고향인 해평면 금호동에 농가 주택을 매입하여, 마당에 연못이 있고 방에 흙벽이 있는 별장을 마련했다. 해금초당(海金草堂)이라 이름 붙인 그곳을 내 인생의 꿈동산 꽃동산’(해평의 작은 동네)라 하며 무척 좋아했다. 가끔 문우들을 초대하여 합평회를 열기도 하였는데, 내가 금호동을 생각하며 고향 그리움을 말하는 고향에는 없다라는 자작 수필을 낭독하기도 했었다.

그토록 활동적이면서 정도 많은 임 시인에게 병마의 그늘이 드리워질 줄을 누가 어림이나 했을까. 어느 날 기침이 나고 몸살 기운이 들어 병원에 가니 폐암이란다. 청천의 날벼락 같은 선고였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항암제를 복용하여 머리가 다 빠져 가발을 쓰고 다니면서도 그는 나는 오늘도 용기를 내고 희망도, 그리움도 가방 가득 챙겨 담아 삶을 찾으러 집을 나섰습니다.”(나를 찾으러)라고 할 정도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런 의지 덕분이었는지 병세가 한동안 호전되어 모임에서 가끔 만날 수 있었고, 좀 조심해서 행동하긴 했지만, 얼굴에는 그 특유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인동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을 때, 인동에 살고 있던 그는 새로 쓴 시를 들고 가끔씩 사무실로 찾아왔다. 자기의 시를 나에게 읽어주기도 하고, 나에게 읽어 보라고도 했다. 읽고 느낌을 말해 주면 그는 명랑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어느 날은 조그만 다육 화분을 들고 찾아왔다. 아기 조막손 같은 잎을 앙증맞게 내밀고 있는 것이 아주 귀여웠다. 귀애하며 사무실에 늘 두고 보다가 학교를 퇴임하면서 집으로 가져왔다. 아직도 내 방 안 텔레비전 앞에 생생히 살아 있다. 그는 가고 없어도-.

9회 금오산 시낭송회에 그와 함께 시낭송가 구은주 시인의 지도를 받아 출연하게 되었다. 나는 신경림의 집으로 가는 길을 낭송하고, 그는 자작시 유월의 태풍을 낭독하였다. 그는 시를 외어도 머리에 잘 들어가지 않더라며 적은 걸 보고 낭독을 하는데, 화사한 한복 차림에 멋진 둥글부채를 하나 들었다. 그 부채에 시를 적어 붙여 놓았던 것이다. 그의 멋진 속임수(?)에 관객들은 기분 좋게 속았을지도 모른다. 그 때도 그는 물론 병중이었다.

나는 퇴임을 앞두고 제2막의 인생은 조용한 시골에서 보낼 것이라 하고, 문경의 한촌에 조그만 터를 장만하였다. 그 터를 그가 보고 싶다고 했다. 여름 어느 날 한 친구와 함께 셋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뒤에는 푸른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 마을이었다. 자기도 만년에는 그런 곳에 살고 싶다고 했다.

문경까지 간 김에 석탄박물관이며 영화 촬영장을 구경하였는데, 그는 숨이 조금 찬다며 걷기를 좀 힘들어 하기에 무리하지 말자고 하고 자주 쉬라고 했다. 구경을 다 마치고 맛좋은 매운탕 집에 가서 저녁을 함께 먹고 유쾌한 기분으로 구미로 돌아왔다. 그 게 그와의 마지막 행보가 될 줄을 그 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퇴임을 하고 정해 두었던 시골 마을로 들었다. 한촌 생활에 침잠해 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밤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저 살 수 있대요. 이젠 살았어요!’ 목소리는 좀 떨렸지만 외치듯이 말했다. “그래요?! 축하해요. 살아야지요. 살 수 있고말고요.” 그 삶의 감격을 함께 나누었다.

시간들이 쉼 없이 흘렀다. 엊그제 문학회 사무국장이 그의 부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투병해 온 건 알지만 이리 무정하게 갈 수 있는가. 살 수 있다고 해 놓고! 무정한 사람이다. ‘살아도 살아도/ 다시 살아 내고 싶은 삶’(희망)이라 해놓고-.

이백여 리를 달려 분향소를 찾아갔다. 그는 여전히 웃음 머금은 얼굴로 국화 속에 묻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내가 대했던 그의 생전 모습들이 너무 아프게 떠올랐다. 그렇게 활달하고 정도 많던 사람이-.

얼마 전에 출판사에 의뢰하여 시집을 만들어 책이 되어 나왔는데 문우들에게 나누어 줄 겨를도 없이 가버렸다며 부군이 비통해 했다. 부군은 나누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유작 시집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그 시집에도 해맑은 마음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언제나 얼굴에 피어나던 웃음꽃이 담겨있을 것이다. 남편과 자식에 대한 진득한 사랑이 담겨있을 것이다. 바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담겨있을 것이다. 그가 간 나라에도 그 마음들 고스란히 가져갔겠지. 활달하고 정 많던 임 시인이여!

그의 <애원>을 옮겨 아린 추모의 정을 새기고 싶다. 저 세상에서도 열꽃 같은 사랑으로 천년만년 영원한 삶을 누리기 바라면서-.

 

당신 가슴에서 피어

세상 걱정 근심 뒤뜰에 묻어 두고

열꽃 같은 사랑 이루고 싶어라

 

잔잔한 호숫가에

조각배 타고

불타는 사랑에

빠지고 싶어라

 

검은 머리에

꽃댕기 달아

하늘에 수놓고

은하수 길을 찾아 천년만년 영원토록

당신의 사랑이고 싶어라. (201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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