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한식 할미꽃

이청산 2013. 4. 8. 22:41

한식 할미꽃

 

한식 성묘를 다녀왔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포근했다.

겨우내 어떻게 지내셨는지, 모든 것이 얼었다가 녹으면서 분토는 무사한지 궁금하여, 소찬이나마 제수를 갖추어 아버지, 어머니께로 향했다.

동지에서 105일째가 되는 날 한식(寒食), 중국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절의를 지키다가 안타깝게 불에 타 죽은 것을 기리는 날로, 이에 유래하여 이 날만은 불을 피우지 않고 찬밥을 먹으며, 조상의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어찌하였거나 이 무렵에는 추운 겨울이 가고 차가웠던 날이 풀리면서 꽃 피고 잎도 돋는 때라, 봄맞이 나들이도 하고 부모님께 철 바뀐 인사도 드릴 겸해서 한식 성묘를 나선다.

한 시간 여를 달려 묘소가 있는 산에 이르니 붉게 핀 진달래며 여러 가지 봄꽃들이 먼저 맞는다. 산소 주위에도 할미꽃, 제비꽃, 양지꽃이며, 쑥이며 원추리 같은 봄풀들이 돋아 있다. 다행히 분토는 많이 이지러지지 않고 분을 덮은 잔디도 뿌리를 잘 얽고 있다.

꽃은 아버지, 어머니께서 보고 즐기시라고 두고 쑥이며 잡풀들을 뽑고 봉분을 다독였다. 진달래 몇 가지 꺾어 상석 앞에 꽂았다. 제수와 함께 잔을 드리고, 평안히 계셨는지, 덩둘한 자식들 걱정 많이 하지 않으셨는지 안부를 여쭈면서 손 모아 배례를 올렸다.

아버지께서 영면에 드신 지 벌써 삼십 년이 훨씬 넘고, 어머니께서는 이십 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두메 시골 학교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면서 결혼하여 아이 둘이 태어나는 세월이 흐른 어느 해 가을, 병석에 계시던 아버지는 대통령이 부하로부터 시해를 당한 이틀 뒤에 세상을 뜨셨다.

그 후로도 나는 객지를 전전했고, 아버지 세상을 떠나신 후 열여섯 해를 홀로 지내시던 어머니께서도 어느 무르익은 봄날 힘들게 눈을 감으셨다. 신분을 바꾸는데 보탬을 얻겠다고 벽지의 조그만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기별을 받고 시골서 허겁지겁 달려와 손은 겨우 잡았지만 말씀은 끊어지신 뒤였고, 어머니는 내가 달려왔을 때 이미 눈을 감으시고 실낱같이 여린 체온만 가슴에 겨우 남겨두고 계실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한 번도 가까이서 편히 모셔보지 못했고, 두 분은 자식 걱정을 한 시도 놓지 못하셨다. 제사며 명절 성묘 때 이렇게 찾아와 배례를 드리는 것이 무슨 위안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리석은 풍수(風樹)의 탄식만 앞을 가릴 뿐이다.

이런 저런 회한에 잠기며 무덤 앞에 앉아 음복하며 찬밥을 먹노라니 아릿한 영상으로 눈동자를 파고드는 꽃이 있다. 무덤 위에, 가에 고개를 숙인 채 함초롬히 피어 있는 할미꽃이다.

문득 어느 여가수의 애잔한 목소리로 부르던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찬바람 몰아치던 겨울이 가고/ 눈 녹은 산과 들에 봄이 오면/ 무덤가에 피어나는 할미꽃이여/누구를 기다리다 꽃이 되었나.//

산 너머 저 마을에 살고 있는/ 그리운 막내딸을 기다리다가/ 외로이 고개 숙인 할미꽃이여/ 무엇이 서러워서 꽃이 되었나.

 

산 곳곳에 산꽃들이 피어나고 있지만 어찌하여 할미꽃은 무덤가에만 뿌리를 두고 피는 걸까. 애달픈 그 전설 때문일까.

옛날 한 옛날에 늙은 어머니가 딸 셋을 홀로 키우며 살았는데, 갖은 간난과 고초를 겪으며 다들 덩실하게 키워 두 큰딸은 부잣집 사윗감 얻어 시집도 잘 보냈다지. 막내는 좀 가난한 집에 시집보냈지만 마음씨가 착해 잘 살 거라고 믿었다지. 세월이 흘러 기력이 쇠한 어머니가 딸들이 보고 싶어 찾아 나서 큰딸, 둘째딸 집을 갔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 박대를 하더라나. 막내딸에게 마지막 마음을 걸고 찾아 나섰다지. 엄동 설한풍을 무릅쓰고 재를 넘어가다가 기진하여 그만 쓰러져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시고 말았다지. 어머니의 죽음을 안 막내딸이 주검을 부여안고 슬피 울다가 어느 양지 바른 곳에 묻었는데, 봄이 온 그 무덤가에 고개 숙인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지.

어머니 마흔 드시던 해에 아들 둘 딸 셋의 넷째로 태어나 줄곧 막내 노릇을 하다가 아홉 살 나던 해에 누이동생을 얻었다. 오랜 세월을 응석둥이 막내로 부모님 사랑도 많이 받고 애도 많이 태우고 자란 것이 몸살이 되어 버렸는지 장성할 때까지도 부모님의 걱정만 받으며 살아왔다. 응석받이 아들 번듯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기다리시기만 하다가 그런 날 보시지 못하신 채, 재 넘어 자식을 찾아가다가 숨 거둔 늙은 어머니처럼 그렇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 아들은 삶의 변전을 거듭하여 한 생애를 마감하고, 또 한 생애를 살아가는 세월이 흘러갔다. 아버지 돌아가실 무렵의 연세에 가까운 나이가 들어,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객지의 자식들을 기다리는 한촌의 노부모가 되어 살고 있다.

이만치라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아버지, 어머니의 애간장 사른 세월 덕분임은 말할 나위 없지만, 입때껏 살아오면서도 무엇 하나 갚음해 드리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쌓여있을 뿐이다.

오늘 저 무덤가의 고개 숙인 꽃이 아버지, 어머니를 더욱 그립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애틋한 그리움이 가슴을 적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덤가에 피어나는 할미꽃이여, 누구를 기다리다 꽃이 되었나!-”

……외로이 고개 숙인 할미꽃이여, 무엇이 서러워서 꽃이 되었나!-” (20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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