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울릉도를 떠납니다 -여기는 울릉도·에필로그

이청산 2008. 8. 26. 16:20

울릉도를 떠납니다

-여기는 울릉도·에필로그



울릉도 떠납니다. 이 섬을 떠납니다. 회한도 많지만 보람도 적지 않았던 섬살이였습니다.

첫사랑은 늘 그리워지듯이 첫 섬살이가 그리웠습니다. 칠 년 전 이맘때 섬을 떠난 이후 한 시도 섬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움은 가슴속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긴 했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섬으로 달려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섬으로 달려 왔습니다. 작년 봄이었습니다. 올해가 회갑을 맞는 해입니다. 작년에 섬으로 오면서 참 아름다운 곳에서 갑년(甲年)을 맞을 수 있으려니 하고 생각하니, 이 또한 생애의 한 축복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 희망을 세우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하나는 학교를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 보겠다는 것이고, 둘은 섬에 문학 단체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내가 사랑해서 가는 섬이요, 내가 좋아서 다시 찾아가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섬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문학 작품들은 허다하되 섬의 문학가들은 없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섬의 삼월은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과 함께 피어났습니다. 내 가슴도 그 꽃을 닮아 붉게 물 드는 듯했습니다. 섬에 들자마자 우선 섬을 한 바퀴 돌아보며 해후의 설레는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살펴보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뭍의 학교에 비하면 모든 것이 너무나 낙후되어 있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어떻게 하면 열악한 학습 환경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참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런 걸 천우신조라 하는 걸까요? 교육부에서 '농산어촌 우수고' 육성 대상 학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백방으로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대상 학교로 지정을 받았습니다. 거액의 예산 지원이 결정되었습니다. 지역의 기관장님들과 주민, 학부모님들을 초청하여 학교 발전 설명회를 열고, 학교 환경을 개선시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희망에 부풀어올랐습니다. 지역의 여러 매체에서는 학교에 많은 찬사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그리 쉽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그런 일에도 시기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더군요. 어느 지방 신문의 어떤 기자는,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인지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던 것인지 학교와 교장을 폄훼하는 기사를 써서 마음을 참 아프게 하더군요. 그래도 학교의 환경은 눈에 띄게 개선되어 갔습니다. 모든 교실이 리모델링되어 안락한 생활 공간으로 변해 갔고, 최첨단 학습 기기가 설치되어 학습의 능률을 높여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교실에 냉난방기를 설치하는 등 학교의 모든 시설이 괄목상대로 달라져 갔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졸업생 모두 원하는 대학에 다 진학하고, 육지로 빠져나가기만 하던 중학교의 우수한 졸업생들이 우리 학교를 찾아 모여들었습니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학교의 전 구성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 이야기가 너무 길었군요.

지난해 5월2일은 저에게는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울릉문학회'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원장님을 비롯한 섬의 각계 각층의 사람들 십여 명이 모였습니다. 문화적인 기반이 척박한 이 섬에 문학의 밭을 일구어 보자, 그리하여 섬의 아름다움을 섬사람의 가슴으로 마음껏 노래해 보자며 뜻을 모았습니다. 뜻을 함께 해준 분들은 섬의 아름다운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저마다 쓴 글을 들고 서로 평가하며 문장의 힘을 키워 갔습니다. 올해 유월, 울릉문화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드디어 '울릉문학' 창간호가 태어나고, 지역민들의 갈채 속에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일백이십여 년 전 개척사 이규원의 발걸음을 뒤 따라 개척민들이 섬에 들어 섬이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듯, 개척민의 심정으로 울릉문학회를 만들고, '울릉문학'지를 펴내노라고 창간의 변을 말하였습니다. 정말 섬 문화의 개척민이 된 심정이었습니다.

곧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만, 학교의 환경 개선 작업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울릉문학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를 건너오면서 목표 삼았던 두 가지 일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조금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학교 일도, 문학회 일도 참으로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만, 시기의 눈길은 좀처럼 제 곁을 떠나지 않더군요. 흠이 되지 않을 것도 흠으로 잡아 매도하려는 섬사람이 있음을 느낄 때는, 내 섬 사랑이 참으로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편주에 몸을 싣고 섬에 들어와 처음으로 섬을 일구던 개척민들의 심정도 그랬을까요? 그 거친 파도, 험한 눈보라와 싸우면서도 개척의 의지를 꺾지 않았던, 그러면서 한없는 고단함도 느꼈을 그 사람들의 심정 말입니다. 의지가 강하다 한들 어찌 힘이야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저의 섬 사랑이 공허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난 봄 주역민들이 저에게 감사패를 들고 왔더군요. 학교의 환경을 잘 가꾸고, 특히 운동장에 체련 시설을 잘 갖추어 주민들의 복지 증진에도 기여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문학회를 두고 떠난다 하니, 모두들 아쉬워하면서 향나무 판에 회의 창립과 회지의 창간의 공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주더군요. 섬을 떠나기 전 날 학교운영위원장께서 학교를 잘 발전시켜 주어 고맙다며 패를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을 받을 때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겸연쩍어 지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저의 섬 사랑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모두들 어찌 내 마음 같기만을 바라겠습니까? 섬에는 비박한 생각으로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사람들보다 나를 이해해 주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섬의 아름다운 경치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엔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 삶의 터인 학교를 조금은 새롭게 다듬어 놓았노라, 섬 역사의 맨 처음으로 문학의 밭 하나 일구어 놓았노라는 소박한 자부심이 내 섬살이 행복감을 또한 더해 줍니다.

이제 떠납니다. 행복을 안고 떠납니다. 만나고 떠나는 일은 세상살이의 다반사가 아닙니까? 떠나는 날이 바로 저의 회갑 날입니다. 생애의 한 단락을 짓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고단했던 기억들은 모두 저동 앞 바다에 던져 버리렵니다. 조선해 저 먼바다 가운데로 훌훌 흘러가게 하렵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렵니다. 저에게서 '바다 건너기'는 언제나 삶 그 자체입니다. 내 사는 일이 곧 바다 건너기입니다. 섬살이의 행복감을 안고 편안한 마음으로  바다를 건너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터를 힘차게 일구렵니다.

아름다운 섬이여, 안녕!

아름다운 섬사람들이여,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2008.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