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울릉문학』세상의 빛 속으로

이청산 2008. 6. 29. 16:43

울릉문학』세상의 빛 속으로

-여기는 울릉도·38



이천팔 년 유월 이십육일 오전 열한 시, 며칠째 흐리기만 하던 하늘이 활짝 개어 푸른 얼굴을 내밀었다. 바다는 커다란 청동거울처럼 맑고 잔잔했다. 바람도 숨을 죽였다.

며칠 전부터 도동항 부두에, 도동 삼거리에 걸려있던 수많은 현수막 중에 무슨 '출판기념회'라는 경축 현수막이 유독 섬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었다. 울릉읍의 도동의 재향군인회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섬 처음의 일이 섬사람들을 자못 궁금하게 했다. 단상 위에도 길다랗고 널따란 플래카드가 걸렸다. 경축 『울릉문학』창간호 출판 기념회, 주최 울릉문화원, 주관 울릉문학회, 후원 KBS울릉중계소 울릉종합고등학교. 여러 기관의 기관장들과 지역민들이 팔십 석의 객석을 거다 메웠다.

섬에서는 처음의 일이었다. 문학회가 결성된 것도, 문학지가 발간된 것도, 출판기념회를 열게 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섬이 개척된 지 일백삼십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섬에는 문인도, 문학 단체도 없었다. 뭍과는 멀리 떨어진 절해고도여서 문화적인 충격을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까. 늘 험한 비바람이며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고단하게 살다보니 문화와 예술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기 때문일까.

 

기념회가 시작되었다. 책의 발행인으로 되어 있는 이상인 문화원장이 맨 먼저 발간에 즈음한 인사 말씀을 했다. 울릉도와 독도를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을 집대성한 '울릉문학'의 발간이야말로 지역 문화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울릉문학회의 활동을 적극 성원함으로써 울릉 문화가 한층 더 발전하기 위한 기폭제로 삼고자 한다고 했다. 문학회 창립 1주년을 맞으면서 회지 발간을 추진했으나 출판 경비 마련이 어려웠다. 관계 요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가 난색을 표할 때, 이 원장이 선뜻 나섰다. 문화원에서 출간을 맡겠다는 것이다. 문학회 이름으로 회지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문화원이 발행인이 되어 출간되는 것도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서 뜻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지역의 문화원은 지역 문화의 중심 발흥지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가 인사 말씀을 할 차례다. 우선 회원들을 모두 앞으로 나오게 하여 오늘의 하객들에게 인사부터 하게 했다. 이우종 고문님을 비롯한 모든 회원들이 나와 회원 명찰을 달고 객석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울릉문학회의 무궁한 발전을 빌어 달라고 했다. 독도 시인 편부경 회원을 소개할 때는 '자신보다 독도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울릉보건의료원장으로 재임하다가 정년 퇴임하는 정만진 부회장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석별의 꽃다발을 전하기도 했다. 회원들은 자리로 들어가고 '울릉문학' 창간에 즈음한 소회를 말했다.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하고 글로 그려낸 사람은 많되 울릉도 출신의 문필가가 없는 지역의 문화적, 문학적 풍토의 척박성을 지적하고, 그 옛날의 개척민의 심정으로 돌아가 문학회를 창립하고 문학지를 창간했음을 말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는 섬을 떠날 사람이지만,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울릉 문학을 일구어 왔음도 말하고, 이제는 울릉 문학의 밭과 씨가 있기 때문에 누가 있건 없건 '울릉문학'은 울릉도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울릉 문화의 정수로서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지역 문화와 문학의 육성을 위해서 지역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달라고 하면서 말을 맺었다. 순간 명치끝에서 덩어리가 하나가 치솟는 듯하면서 눈물이 나려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내빈의 축사가 진행되었다. 유고한 군수를 대신하여 김광호 부군수께서 등단하여, 자연 경관은 우리나라의 어느 곳 못지 않게 아름다운 곳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늘 갈증을 느끼고 있던 우리 울릉도에서 '울릉문학회'가 창립되고, 이제 '울릉문학'지 창간호까지 내게 된 것은 지역의 문화와 예술이 한층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모든 군민들과 더불어 그 기쁨을 함께 하고자 한다며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신봉석 군의회 의장께서 나와, 정제된 글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울릉도와 독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하며, 회원 여러분들의 창작 활동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임학빈 교육장께서는 울릉도만이 지닌 자연 풍물과 환경, 문화적 특성과 역사적 전통, 생태계와 풍속 등을 통해 꽃피우는 문화가 '울릉문학'일 것이라는 말로 '울릉문학'의 창간을 축하했다.

 

인사말과 축하의 말씀이 끝나자 문학의 향기를 새기는 무대로 이어졌다. 먼저 축하 연주 순서-. 울릉중학교 김덕식 선생이 섹소폰을 들고 등장했다. 김 선생은 섬에서는 널리 알려진 섹소폰 연주가다. 지난 연말 '독도해오름합창단'의 연주회 때 김 선생이 찬조 출연하며 연주를 하던 중에 정전이 되어 장내가 혼란에 빠지려할 때, 김 선생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연주를 계속하여 전깃불보다 더 빛나는 감동으로 청중을 진정시키기도 했고, 그 이야기가 나의 글 '어둠 속의 연주회'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그 글이 '울릉문학' 속에도 실려 있음을 사회자가 소개하는 가운데 '홀로 아리랑' 연주가 시작되었다. 순간 모든 청중들의 멎는 듯했다.

"저- 멀리 동해 바다 외로운 섬∼" 멜로디만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그 선율에 실린 노랫말 하나 하나가 섬사람들 폐부 깊숙이로 파고들면서 전율 같은 감동이 온몸에서 솟아오르는 듯했다. 설움덩이 같기도 하고 울분덩이 같기도 한 독도가 모든 사람의 가슴에서 꽉 차 오르고 있었다. 이 설움과 울분을 담아내기 위해 '울릉문학'이 오늘 세상의 빛 속으로 나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장내를 압도하던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은 일제히 박수를 터뜨리며 '앙코르!'를 연호했다. 김 선생은 앙코르곡으로 '향수'를 연주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이어 회원들의 시 낭송으로 이어졌다. 먼저 박경필이 회원이 등장하여 '울릉문학' 창간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온 오세영 시인의 축시 '울릉도'를 낭독했다.

"밝음을 지향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빛을 좇아 이렇듯 멀리 동으로 동으로/ 내달았을까.……신이 이 지상에 떨어뜨린 안 알의 진주처럼/ 국토의 순결한 막냇누이여./ 울릉도여."

울릉도를 '국토의 순결한 막냇누이'라고 할 때 박 회원의 목소리는 한결 고조되어 갔다. 절해 고도의 고적감이 온몸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편부경 회원이 나와 자작시 '울릉의 노래'를 낭독했다.

"바람에 밀려 밀려 파도 결을 타 보았나/ 동해로 오백 리 백파의 끝 울릉도……"

그의 시는 문학지에 실려 있었지만, 마이크를 손에 잡고 몸을 돌려 하늘을 응시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암송으로 낭독했다. 자작시라도 기억하고 있기란 쉽지 않은데, 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암송으로 낭독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객석의 박수 속에서 편 시인이 무대를 내려오자 나리분지에 사는 김현옥 시인이 나와 자작시 '구름'을 낭독했다.

"문득 고개 들어/ 하늘 움큼 삼키면/ 햇살이 비벼 빤 듯/ 눈부시게 널려 있는 구름이 웃고 있다."

눈을 들어보면 숲과 구름밖에 보이지 않는 나리분지 그 삶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그려진 시였다. 구름이 웃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맑고 밝은 김 회원의 청순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객석에서도 한껏 맑고 밝은 박수가 터졌다.

죽암교회 목사님이신 임혜철 회원이 등장하여 두 팔을 벌렸다. 자작시 '가슴 뿌듯한 만남'을 설교하듯 낭독해 갔다. '당신은 기본이 된 사람입니다.'로 시작한 그의 시는 "만병을 통치하는 해결사/ 당신을 내 안에 둔 나는 진정 자랑스럽습니다./ 어디에라도 있는 자유이자 당신은 나의 기쁨입니다." 로 끝맺었다. 당신은 누구일까. 하느님일까. 어쩌면 참으로 겸손한 임 목사 자신을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문양숙 씨가 등장했다. 자작시 '바다는 나의 친구'를 낭독하기 전에 "저는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항상 바다에 나갑니다. 바다는 언제나 저와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해 줍니다. 바다는 참으로 정다운 저의 친구입니다."라고 하며 시를 낭독해 나갔다.

"……이내 마음에도 괴로운 일들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구나./ 바다야! 우리 힘내고 서로 위로하자꾸나."

섬사람 누구나 안고 있는 섬살이 고단함 때문일까. 해풍에 밀리는 파도소리 같은 박수가 장내를 요동쳤다. 문 회원의 시가 오늘 출판기념회의 마지막 순서임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 장내는 한 동안 박수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천천히 일어섰다. 회원들을 찾아가 손을 잡았다.

"이 거 참 처음이네! 무슨 무슨 행사도 많지만 이런 행사는 처음 봤어!"

"이런 거 와 좀 진작 못 했노!"

"내년에 책 또 나오지요? 기념회도 또 하지요?

"감사합니다. 예! 하고 말고요. 하고 말고요"

회장 입구의 테이블 위에 놓인 책들이 동이 나버렸다. 모인 사람들 수보다 훨씬 더 많이 갖다 놓았건만 책이며, 책을 담는 봉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돌아가고 무대에는 수많은 축하 화분들만 남았다.

단상 앞에 놓인 화분에서 문득 꽃들이 힘차게 피어나고 있었다.

섬 역사의 새로운 꽃이-.

섬 문화의 새로운 꽃이-.

섬 문학의 새로운 꽃이-.

 

순간 휘몰아치던 파도가 밀려 가버린 썰물의 바다 같은 허전함이 내 가슴으로 저며왔다.

그리고 '울릉문학'은 세상의 빛 속으로 나갔다.♣(2008.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