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풍랑주의보 -여기는 울릉도·31

이청산 2008. 2. 17. 17:04

풍랑주의보

-여기는 울릉도·31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졸업생에게 들려줄 회고사를 써서 전자우편을 이용하여 학교로 보냈다. 교감선생님에게 대신 낭독해 달라고 부탁했다. 풍랑은 바다에만 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도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뜻밖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지 열 사흘째가 되는 날, 학교는 사십여 일간의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교하는 날이다. 개학식에는 어차피 참석할 수 없지만 사흘 후에는 거행되는 졸업식에는 꼭 참석해야 한다. 의사는 치료를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지만, 남은 치료는 스스로 하겠다며 퇴원을 서둘렀다. 입원 중에 설 연휴가 계속되어 더 일찍 퇴원 수속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내일 배를 타고 섬으로 가면, 모레는 예행연습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글피에 졸업식을 거행하면 된다. 혹 내일 배가 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모레 배를 타면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은 지장이 없다. 소정의 교육 과정을 열심히 수료하고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누가 대신하여 졸업장을 수여하게 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 같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내가 참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처는 아직도 아리고 있었지만 가벼운 기분으로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챙겨온 몇 가지 치료약과 함께 바다를 건너 갈 가방을 꾸렸다. 학교로 돌아가면 할일이 참 많다. 졸업식도 거행해야 하고, 한 학년도를 마치는 종업식도 해야 하고, 선생님들의 인사 발령이 나면 환송과 환영도 해야 하고, 신학년도 업무 추진을 위한 조직 구성도 해야 하고……. 마음은 벌써 섬에 가 있었다.

핸드폰에서 메시지 도착 신호가 울렸다. 울릉도·독도 일원에 대설예비특보가 내렸다는 것이다. 눈은 와도 괜찮아. 바람만 불지 않으면, 파도만 높지 않으면 배는 뜰 수 있지 않은가. 다시 메시지가 왔다. 밤부터 강풍주의보가 발령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일 배는 뜰 수 있을 거야.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는 듯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시간의 갈퀴가 온몸을 할퀴며 달려들었다. 오후 4시38분 다시 메시지가 왔다. '풍랑예비특보, 동해중부 먼 바다, 12일 새벽, 동해남부 먼 바다 12일 아침', 12일이면 내일이고 섬을 향해 바다를 건너야 할 날이다. 선표를 예약해 놓은 선박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은 항로상의 기상 악화로 입출항이 통제되었기 때문에 배가 뜰 수 없다는 것이다. 상처가 더 아려왔다. 모레는 사정이 어떻겠느냐 물으니 예측하기 곤란하다며, 글피는 배가 뜰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글피로 예약 연기 여부를 물어 '그리하라' 했지만, 모든 기운이 몸속을 빠져 나가는 듯했다.

변화난측한 것이 겨울 바다 날씨 아닌가. 설마 모레는 배가 뜰 수 있겠지. 모레만 섬으로 가도 글피의 졸업식 참석은 문제없겠지. 복잡하고 불안하게 얽혀 가는 상상의 실타래를 겨우 수습하며 잠이 든 밤이 지났다. 밤중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내일은 오늘이 되고, 모레는 내일이 되고, 글피는 모레가 되었다. 포항여객선터미널로 전화하여 내일은 배가 뜰 수 있을 것이냐고 물으니 오후5시 이후에 다시 연락해 보라고 한다. 그 때 내일의 입출항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후 5시까지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고전적 표현이 참으로 실감나게 다가왔다. 5시 넘어 터미널로 다시 전화를 했을 때, 하얀 절망이 눈앞을 아득하게 가렸다. 내일 새벽에 풍랑주의보가 예비되어 있어 배가 뜰 수 없다는 것이다. 내일 배가 못 뜨면 모레 섬으로 간다고 하여도 졸업식에 참석하기는 글렀다. 포항에서 10시에 출항하는 배가 섬에 도착할 때쯤은 졸업식은 이미 끝나버릴 것이다. 나의 참석을 기다렸다가 식을 진행하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어찌하나. 오히려 머리 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섬으로 돌아가 졸업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내 의지는 풍랑주의보 앞에서 너무나 초라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다시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내일이 졸업식 날이다. 배가 못 뜰 줄 번연히 알면서도 터미널로 전화를 했다. 계속되는 풍랑주의보로 오늘도 입출항이 통제되었다는 물기 없는 자동응답 메시지만 야속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래, 배가 못 뜨는 것을 난들 어찌해. 하늘이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 절망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하늘의 탓으로 돌린다 하여도, 그러나 졸업식이 잘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날씨가, 하늘이 내 빈자리를 채워주면서 졸업식이 잘 진행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학교로 전화를 했다. 식의 준비며, 내빈 맞이며, 식의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내가 해야 할 모든 역할은 교감선생님께서 대신해 달라고 부탁했다. 섬을 사는 사람들은 서로의 섬 살이 사정을 잘 안다. 교무부장이며, 교감선생님은 모든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애를 쓰겠다며, 걱정하시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레는 희망으로 교문을 나설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은 내 손으로 쥐어주지 못할지언정 축복과 당부의 말도 해줄 수 없는 것은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아, 식장에서 낭독할 '회고사'를 학교로 보내기로 했다. 퇴원하여 배를 무사히 타고 학교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졸업식 날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고, 학년말의 여러 가지 일들이 밀어 닥칠 것이라 생각하여 병상에 앉아서 힘들게 써 둔 글이었다.

글의 앞머리에 췌언이 될지도 모를 말을 덧붙였다.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지난 1월27일 대구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입원 치료를 받아 오던 중, 서둘러 퇴원하여 졸업생들과 더불어 졸업식을 함께 할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않아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함을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학부모님 여러분,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넓은 아량으로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저의 회고사를 드립니다."

풍랑은 바다에만 있지 않았다. 풍랑은 내 안으로 옮겨와 거칠고 모진 파장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나는 그 풍랑을 헤치면서 한사코 바다를 건넌다. 바다를 건너는 일, 파도를 헤쳐 가는 일, 그리고 섬에 닿는 일은 곧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그 섬을 그리며, 그 섬에 이르기 위여 바다를 건넌다. 온몸을 허우적이며 파도를 밀어낸다. 세상의 양광을 받으며 사는 날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건널 바다가 있고, 닿을 섬이 있음이 내 삶의 까닭임에야-.

바다에 거센 풍랑이 일고 뱃길이 끊어질 때, 그 풍랑이 나에게 옮겨와 나를 때릴 때, 아, 문득 고독해진다. 풍랑이 일으키는 고독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 고독도 어차피 나의 것이 아닌가. 내 삶의 또 하나의 모습이 아닌가. 신열처럼 엄습하는 고독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해가 뜰 것이다. 또 다른 내 얼굴이 나타날 것이다. 고요한 바다가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삶의 그 바다를 건너 그 섬으로 갈 것이다.

내일은 배가 뜰 것이다.♣(2008.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