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수필

2007 원양 승선 실습 길에서

이청산 2007. 6. 9. 16:37

 실습선 승선기 Ⅰ
 
-원양실습 길에서·2
(가는 길 30시간)



2007년 5월14일 9시50분, 실습선 해맞이호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먼바다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해양생산과 아이들의 '원양실습'을 나서는 길이다. 하늘도 바다도 맑고 푸르렀다. 환송을 나왔다가 돌아가는 해양과학고의 교장선생님들과 여러 선생님들이 손을 흔들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손길을 보며 함께 손을 흔들었다.

우리 학교 8명, 구룡포종고 18명, 포항해양과학고 8명 모두 34명의 아이들, 인솔자 6명, 선원 17명 총 57명이 5박 6일 동안 생사를 같이 해야 하는 실습에 나선다. 목적지는 일본 스루가항, 지금부터 30시간 정도가 걸릴 것이라 한다. 바다 위의 서른 시간, 생애의 첫 경험이 될 것이다. 부두를 등지고, 포스코를 바라보며 영일만을 벗어난다.

뭍의 모습이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 이제 보이는 것은 하늘과 바다뿐, 세상일은 잠시 잊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학교의 교감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지난 달 아이들의 폭행사건과 급식소 일, 학부모회와의 관계 등이 무슨 신문에 보도가 되었다고 도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폭행 사건은 수습과 처리가 다 끝난 일이다. 급식소 일이며, 학부모회 관계란 무엇인가. 나 모르는 무슨 일들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었단 말인가. 진상을 파악하여 도교육청에 경위를 사실대로 보고하라고 했다. 나의 어지러운 생각과는 달리 배는 출렁이는 물을 가르며 달려나가고 있었다.

호사(好事)에는 다마(多魔)인가, 교감선생한테서 다시 전화가 왔다. 3학년이 질서를 잡는다고 1,2학년을 괴롭힌 모양이다. 피해 학부모들부터 항의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적절하게 처리하라고 했다. 바다에는 서서히 파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내가 넘어야 할 파도는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있는 것 같다. 이 일들은 항해 중에도 계속 나를 잡고 있을 것 같다. 속세를 떠나기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1시가 되어 갈 무렵 육지가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었다. 오늘의 항해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배는 길 없는 물 위를 달려가며 뒤쪽으로 하얀 물보라 길을 남긴다. 그러나 그 길도 이내 지워져 망망한 대해만 남는다. 전화기를 끄기 전에 아내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다. 망망한 대해 그 한 가운데 내가 떠 있노라 했다.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듣고 전화기의 전원을 껐다.

배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배의 모습이며 바다의 정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신기한 견문들이다. 조타실로 올라갔다. 항속은 약 11노트, 20km 정도라고 했다. 자일로컴퍼스가 방향을 잡아 주는 대로 배는 길을 만들어가며 잘 달려나갔다. 웬 잠수함이 보인다. 무슨 목적으로 항해를 하고 있는 어느 나라의 잠수함일까. 선원들도 항해 중 잠수함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고 했다.

12시에 점심이 나왔다. 커다란 밥그릇에 아구국과 김치 등 찬을 네 가지나 마련했다. 이제 며칠 간은 이 선원들과 더불어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한 식구다. 커다란 그릇에 밥을 담았다. 뱃사람들은 배의 요동 때문에 소화가 잘 되어 밥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밥을 좀 들어내고 평소의 양대로 먹었다. 속이 조금 안 좋은 듯했다. 멀미 기미가 느껴졌다. 울릉도를 오가는 배를 탈 때 누워 가는 사람들은 멀미를 하지 않더라 싶어 선실 침상에 누웠다. 비몽사몽의 잠이 들었다. 멀미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파도가 점점 높아지는 듯했다. 3m는 넘을 것 같다. 배가 요동을 했다. 좌우로 많이 움직였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그렇다고 했다. 배가 많이 흔들렸다.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더니 속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아 일어나 조타실로 올라가 보았다. 오후 5시경이었다. 80마일 정도를 왔을 거라고 한다. 7시간의 항해 끝에 120키로 정도를 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육지로 말하면 시속 17,8km로 달린 셈이다. 마라톤을 하는 정도의 속도라 할까. 지금 부는 바람은 갈바람인데 낮의 열기 때문에 파도가 일기 때문에 해가 지면 진정될 것이라고 했다. 어서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멀미 기운이 들어 침실로 내려와 누웠다. 배는 요동을 쳤다. 누운 자리도 좌우로 흔들렸다. 늘그막에 이 무슨 요람을 탄 것인가.

6시경에 저녁 식사가 나왔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속이 받아 줄 것 같지 않았다. 먹기를 포기하고 다시 자리에 누었다. 배가 흔들리듯 삶이 이렇게 흔들려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 내가 드러눕듯 흔들리는 삶을 못 이겨 드러눕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학교의 일들은 잘 처리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워서 선창 구멍으로 보는 바다, 하늘만 보이다가 허옇게 부서지는 바다만 보이기를 거듭한다. 파도는 잠들 줄 모른다. 7시 반경. 창 밖이 어두워진다. 그래도 파도를 잦아들 줄 모르다. 이 선생을 비롯한 세 사람은 파도에도 아랑곳없이 카드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파도를 이겨내려고 놀이에 열중하는 것일까. 놀이에 열중하다 보니 파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일까.

밤 9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밤은 깊어 가는데 파도는 언제쯤 잠이 들까.

파도는 잠들지 않았다. 침상에 누워 있어도 물 위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물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몸이 굴렀다. 좌로 기웃 우로 기웃, 때로는 둥둥 떠가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을 믿고 이 물 위에 떠서 잠을 이룰 수 있는 것일까.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 좁쌀 같은 이 조그만 배에 내 전부를 의탁해도 될 것인가. 그러나 바다에도 밤은 어김없이 깊어 가고 있었다. 잠 들 줄 모르는 파도를 싸안고서-.

 

2007년 5월15일.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아직도 캄캄했다. 시계를 보니 4시44분. 5시가 되는 것을 보고 일어났다. 갑판에 나갔다. 바다가 밝아 오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체조를 했다. 조타실에 올라갔다. 4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며 밤새 키를 잡고 있는 조타수-. 지금까지 약 200마일 정도를 달렸을 거라고 한다. 바다의 1마일은 1600m인 육지와는 달리 1852m라고 한다. 그러면 370km 넘는 거리를 달려 온 것이다. 전자해도에 배가 일본 수역을 넘어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동차의 액셀레이터에 해당하는 텔레그래프로 스피드를 조절하며 안전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한다. 천 리 가까운 길을 17시간 여에 걸려 달려 온 것이다. 아직 해는 수평선만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있다. 얼른 세수를 하고 바다에 떠오는 새 해를 맞이하리라 생각하고 선실로 내려와 얼굴을 씻고 닦고 있으려니, 해가 하늘에 둥실 떴다고 누가 소리친다. 카메라를 들고 급히 갑판으로 갔다. 해는 이미 수평선을 훨씬 떠나 있었다. 솟으려니 그렇게 순식간에 솟아버린다. 세상 모든 일에 때를 잘 얻는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다시 알겠다. 새로이 떠오른 맑고 밝은 해의 모습과 아침 바다 풍경을 몇 장 카메라에 담았다. 광막한 바다를 달리고 있는 배. 배경은 참 단순하다. 하늘과 바다 뿐. 그러나 하늘이 정지 영상이라면 바다는 동영상이다. 때로는 커다란 물결을 때로는 잔잔한 수면을 만들며 잠시도 얼굴 바꾸기를 쉬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왔다. 위성으로부터 전파를 받아 중계하는 것이라 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67%로 간주한다던 여론 조사 부분을 양보하겠다고 했단다. 잘한 일이다. 박근혜 후보도 잘 생각했다고 평했다. 강재섭 대표가 사퇴를 안 해도 되겠다. 두 사람의 후보 경선 안이 절충 안되면 당 대표도 의원직도 던지겠다고 배수진을 쳤었다. 경선 파국을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둘 중에 누가 한 사람 대통령이 되어야 할 일이 아닌가. 이 멀고먼 바다 한 가운데도 세상일은 살아 있구나. 7시경에 학생들이 아침밥을 갖다 주었다. 맨 김에 계란 후라이와 김치 그리고 멸치, 시장이 반찬일까. 어제 저녁을 굶었더니 아침밥 맛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맛있게 조반을 끝냈다.

선장이 3시반 경이면 일본의 스루가항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준다. 8시간 가량이 남았다. 우리의 뱃길이 몇 시간이 남았느냐 하는 것은 바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다는 언제나 출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글을 하나 썼다. '섬사람 되어 살다 보니', 어제 출발할 임시에 받은 교감 선생의 전화가 생각이 났다. 일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S 기자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보도를 했을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섬사람 되어 살다보니 당해야 할 일인 것 같아 씁쓸해지는 마음을 글에 담았다.

글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는데, 누가 소리를 질렀다. 밖에 일본이 보인다는 것이다. 뛰쳐 나가보니 산 하나가 수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9시45분 경이었다.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다. 물빛은 더 이상 푸를 수가 없는 짙푸른 빛. 간혹 부유물이 보이는 것을 보니 육지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10시 반경, 확실한 육지의 모습이 보였다. 산 위에는 레이더 기지가 보이고 중턱에는 등대 하나가 서 있었다. 일본의 어디쯤 되느냐고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또 한 시간 뒤쯤에는 그곳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ㄴ자 형상을 하고 있는 일본의 굽은 안쪽으로 우리가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 했다. 4시간 정도 후면 목적지에 닿을 거라고 한다.

뱃전 아래를 내려다보니, 배는 빠른 속도로 물결을 헤쳐 나가고 있다. 물이 솟구치기를 거듭하며 부서지고 있다. 어지럽다. 세상사가 저렇게 부서진다면 참 견디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실로 돌아와 잠시 자리에 누웠다. 기관 소리가 요란하다. 누구는 그 소리에 귀가 하도 익숙해져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보고 들리는 세상의 모든 것이란 다 마음먹기 탓인 모양이다. 살풋 잠이 들었다가 깨니 점심때가 되었다. 12시에 점심을 먹었다. 미역 오이채국에 찐 양배추로 맛있게 먹었다. 출항 전에 마련하여 저장해 놓은 것으로 계속 조리를 해야하는데, 갖가지 부식을 준비해 온 모양이다. 배는 계속 달려나간다. 망망한 대해다. 시간당 연료가 0.8드럼쯤 소모된다고 했다. 목적지까지 도착하려면 25드럼 정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연료도 넉넉히 싣고 왔겠지. 이 바다 가운데에서 준비해 놓은 것이 동이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오후 1시30분 다시 육지의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산의 모습이 보이고, 둥그런 시설이 보이는 것은 원자력발전소라 한다. 이제 우리가 목표로 하는 스루가항에 닿을 모양이다. 갑판의 깃발 게양대에 일장기를 게양한다. 입항을 하려면 상대국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 국제관례라고 한다. 2시, 산의 모습이 완연히 보인다. 어느 지점에는 마구 절개해 놓은 곳도 보인다. 3시 스루가항의 모습이 드러났다. 커다란 크레인 시설이 보이면서 부두가 나타난다. 선원들이 나와 선수의 밧줄을 풀기 시작한다. 큰 밧줄 끝에 가느다란 줄이 달려있다. 부두에 닿을 무렵 접안장을 향해 던질 모양이다. 3시 25분 뱃고동을 울린다. 입항을 알리는 신호음이다.

접안이 시작되었다. 선두의 밧줄부터 먼저 던진다. 부두 종사원들이 나와 던진 줄을 받아 당겨 준다. 가는 줄 끝에 굵다란 밧줄이 달려있다. 밧줄을 고리에 건다. 선미도 마찬가지다. 배에 좌우 프로펠러가 없기 때문에 앞뒤의 밧줄로써 배를 당겨 부두에 붙인다고 한다. 접안이 끝난 것은 4시가 넘어서였다. 배와 부두 사이에 다리가 놓여진다. 드디어 먼 뱃길이 끝났다. 장장 30시간을 달려 온 것이다. 파도도 끝나고 요동도 끝났다. 중심을 못 잡아 흔들리던 몸도 바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물길을 달려 올 때에 비하면 새 세상을 만난 것 같다. 새 세상 만났으면 새 사람이 되어야 할 일, 마음도 새로이 이국의 문물을 대해 볼 일이다.

세관원들이 올라온다. 4시40분부터 입국 심사가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인솔자들의 여권과 사증을 일일이 살핀다. 입국 심사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입국 심사뿐만 아니라 체류 일정 조정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남의 나라에 발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일인 모양이다. 6시가 넘어서야 배 밖을 나올 수가 있었다. 부두 주위에는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철조망이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시간을 정해 놓고 출입을 시킬 것이라 한다.

이제 이국의 문물을 살펴 볼 일, 그리고 달려온 거리만큼 달려 갈 일이 남았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온 우리들에게 '원양실습'이란 무엇인가. 바로 배 타기를, 그 험한 뱃길을 달려오기를, 달리면서 겪는 온갖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체험하는 실습이다. 지난 30시간의 항해를 통하여 지독한 멀미도 앓아가며, 광막하고 아득한 바다 한가운데서 삶을 돌아보기도 하며 '원양'을 체험하는 실습을 했다. 이국의 문물을 살펴보고, 좋은 견문을 얻어 갈 수 있다면 그건 덤이다. 더욱 보람된 체험을 다짐하며 뱃전에 '원양실습' 기념 플래카드를 달아놓고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철조망 둘러쳐진 스루가항에 이국 땅의 새날을 예비하는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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